죽어가는 사람들

by 도현수


외국의 동기부여 영상에서 사람은 25세부터 죽어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그저 자극적인 문장이겠거니 했지만,

지금 와서는 그 말이 꽤 깊이 와닿는다.


우리는 스무 살이 넘고, 사회로 나와 생존을 시작한다.

처음엔 어쩌면 희망도 있었고, 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이름의 흐름은 생각보다 강하고 빠르다.

급여는 매달 나오지만, 시간은 매일 흘러간다.

일을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는 일’이 되고,

삶은 방향이 아닌 생존을 위한 반복이 되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했는지를 점점 잊어버린다.


언제부터였을까.

무엇 때문에였을까.

어쩌면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속도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버느냐’, ‘어떤 차를 타느냐’, ‘어디에 사느냐’

이 모든 외적인 기준은 비교를 전제로 하며,

비교가 일상이 된 순간,

행복은 타인의 기준으로 측정되기 시작한다.

행복이란 본디 자신만의 기준으로 채워야 하는 감정인데,

우리는 그것마저 바깥에서 찾으려 한다.


결국, 무언가를 ‘가질 수 있을 때까지’는 불행하고

가지고 나면 ‘더 좋은 걸 바라기 시작하는’ 끝없는 욕망의 루프 안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 루프 속에서, 우리 안의 불은 서서히 사그라든다.

아직 살아있지만, 이미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하루는 감정이 없고, 어떤 하루는 목적이 없다.

그저 숨은 쉬고 있지만, 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어렸을 때 썼던 일기장을 펼쳐 본 적 있는가.

지금은 아무도 보지 않는 그 조용한 기록 속에는 가슴이 뛰던 말들이 가득할 것이다.

그 시절엔 세상을 다 가질 것 같았고, 모든 날이 기대되었고, 내가 중심인 우주를 믿었었다. 그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이따금 조용한 밤,

아무도 없는 시간에 그때의 나를 떠올려본다.

그 안에 아직 살아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다시 불러내야 한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작은 기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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