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으로 보는 과거의 기억
오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한다. 매일 아침 무엇을 입어야 할지 고민에 빠져 항상 내뱉은 말이 ‘입을 옷이 없네’였지만 막상 옷장을 열어서 보면 옷들이 우수수 떨어질 지경이다.
며칠 전에 이제는 더 이상 안 입는 옷들을 기부했다. 친구가 봉사활동하는 곳에서 옷을 필요로 하기에 안 입는 옷들을 차곡차곡 박스에 담아 보냈다. 박스에 안 입는 옷들을 담으면서 내가 이 옷들을 처음 샀을 때를 생각해 보았다.
검은색 코트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 받은 코트고 베이지색 후드집업은 작년에 아마존에서 샀던 옷이다. 이 검은색 코트와 후드집업을 입고 미국 대륙 횡단 여행을 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추억이 담긴 옷들을 떠나보내는 게 아쉽기도 했지만 이제는 보내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떠나보냈다.
어렸을 적에는 언니 혹은 아는 지인들한테 옷을 물려 입었다. 나는 사실 그걸 더 좋아했다. 애착이 가는 옷은 거의 없었고 내 몸이 크면서 자연스레 입지 못하는 옷들이었기에 더더욱이 옷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가 원해서 산 옷들은 내 몸이 크면서부터는 더 이상 입지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굳이 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자 내가 아끼는 옷들을 버리기가 두려워졌다. 옷들과 함께한 세월이 있고 그 옷을 입고 만든 추억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교복이 그러했고 항상 입고 다녀 해진 후드티가 그러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옷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아꼈던 옷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단체에 기부하고 혹은 너무 해져서 버리게 되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정말 입을 옷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할 줄 몰랐던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넘치고 넘치는 옷들을 한 번 정리하고 나면 뭔가 후련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옷이란 건 참 신기한 것 같다. 옷을 보면 그 옷을 입었던 때의 추억이 묻어나고 가끔은 정말 가끔은 옷에 그때의 냄새가 배어있다. 그러고 나면 괜히 추억에 잠겨 헤어 나오지 못한다.
요즘은 정말 추억에 관한 글들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나는 과거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성장시키는 시기를 거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후회하지 않도록, 아쉬운 과거를 만들지 않도록 내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한 순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당장에라도 벗어던져버리고 싶던 교복. 그러나 매일매일 의자에 앉아 공부하느라 반질반질해져 버린 교복과 체육복을 이제는 입지 못한다.
몇 년 전, 엄마가 택배로 보내주신 보라색 윗도리. 그때는 감사한 줄도 모르고 맘에 안 드는 옷이라며 한 번도 입지 않았다. 새 옷이었는데. 엄마가 고르고 골라 보내주신 소중한 옷을 그때는 철이 없어 입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중히 여기지 않은 나의 손을 떠나버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짐을 한 번 줄여보겠다고 모든 옷들을 다 내던져버리고 왔다. 대학교 1학년 첫 오리엔테이션에 가는 날, 나는 한껏 줄어든 옷들을 보고 한 숨을 푹 내쉬었다. 그동안 아낀다고 몇 번 입지 않았던 옷부터 거들떠보지도 않은 옷들까지 전부 사라지고 내 곁에 남은 옷은 몇 가지들 뿐이었다. 정말 입을 옷이 없어 잠옷까지 입으며 캠퍼스를 돌아다니던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불평불만하지 않기로. 다시는 내가 가진 것들에 함부로 대하지 않기로. 이제는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이번 주 과제 중 하나는 내 옷장에 있는 옷들 중 몇 벌을 골라 어떻게 이 옷을 사게 되었는지, 어디에서 만들어졌으며 어떤 경로로 이 옷이 내 손에 들어왔는지에 대해 글을 쓰는 과제였다. 단순한 과제이지만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과제였다. 어떤 옷은 친척들에게 받은 옷이고 어떤 옷은 고모부께, 어떤 옷은 고모께, 어떤 옷은 부모님께, 그리고 어떤 옷은 내가 직접 산 옷들이었다.
막상 옷장을 열어보니 내가 직접 돈을 내고 산 옷들을 거의 없었고 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거나 물려받은 옷들 뿐이었다. 이렇게나 내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옷장이었다. 나는 옷 한 벌 한 벌을 찬찬히 돌아보며 내가 이 옷을 처음 받았을 때, 처음 샀을 때를 기억했다. 이 옷이 만들어진 공장은 저 멀리 있는데 지금 나는 이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많고 많은 옷들 중에 지금 이 옷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사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또 이 옷들을 떠나보내겠지만 이제는 아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가진 것들에 이제는 감사할 줄 아니까 더 이상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며 미안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또 오늘을 감사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내가 가진 것들에,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