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향수에 젖어들다
음식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간혹 살기 위해 먹는 음식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몇 주 전, 동아리 모임에서 ‘음식’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도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저녁을 먼저 먹고 오느라고 이미 시간이 많이 늦은 상태였지만 다들 반갑게 맞아주는 눈치였다. 한국 과자 새우깡이랑 꼬북칩도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한 움큼 집어와 앞접시에 담았다.
‘음식’이 토론 주제이기는 하지만 유학생 동아리인 만큼 “home food” 집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각 나라의 음식을 이야기할 때 음식 이름만큼은 번역이 안되기 때문에 직접 그 음식을 찾아보고 사진을 봐야 한다는 게 매력적인 것 같다. 생전 처음 듣는 음식인 만큼 맛도 모양도 전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귀 기울여 들으려고 했던 것 같다.
질문 중 하나가 만약 평생 동안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그 음식은 무엇인가였는데 음식 하나랑 음료 하나 이렇게 차례차례 대답을 해나갔다. 사실 나는 정말 오래 고민했다. 내 차례까지 순서가 많이 남았기 때문에 무엇을 먹어야 평생 동안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는데 바로 김치찌개다. 한국에 있을 때는 딱히 아무 생각 없었던 김치찌개가 유학을 오면서부터 그리도 간절해지는 이유는 아마 자주 먹지 못해서겠지만 또다시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보고 내 최고의 음식이 되었던 것도 같다. 김치찌개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아마 그때의 추억과 그때의 감정이 전달되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튼 김치찌개를 마음에 염두에 두고 음료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순간 라면이 생각났다. 김치찌개는 돼지고기 김치찌개, 꽁치 김치찌개, 참치 김치찌개, 이렇게 많아봤자 세 종류이지만 라면은 종류가 다양하지 않는가? 게다가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처럼 김치찌개 맛 라면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답을 라면으로 바꾸게 되었다.
다음 질문은 음식을 살기 위해 먹는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지였는데 1에서 10까지 어느 정도인지도 답할 수 있었다. 1이 정말 살기 위해 먹는다면 10은 오로지 먹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고 대답을 생각해 보았다.
사실은 나는 정말 음식을 좋아한다. 그리고 ‘맛잘알’이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맛을 잘 알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음식들과 음식 조합들을 생각해 내기 때문이다. 6살 때 처음 추어탕을 맛보고 10살 때 처음으로 곱창을 맛보았다. 어른들이랑 함께한 자리에서 곱창을 먹었는데 아직도 그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곱창이 징그럽게 생겼다고 절대 안 먹겠다고 다짐한 지 30분도 안 지나서 고소한 냄새에 어느 순간 내 젓가락은 곱창을 향해가고 있었다. 쫄깃하고 고소한 맛에 매료되어 나는 웬만한 어른들보다 더 많이 먹었다. 거기다가 약간 느글느글거릴 때쯤에 마늘을 바짝 구워서 같이 쌈을 싸 먹으니 느글함이 싹 가실 정도였다. 그 정도로 나는 음식을 너무 좋아했다.
크면서부터는 당연히 친구들과 여기저기 맛집을 다니면서 음식을 정복했다. 학교가 끝나면 항상 가는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시켜 먹었다. 순대까지 먹는 날에는 아주 작정한 날이었다. 용돈 받은 날이나 특별한 날에만 순대에 튀김까지 주문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점심을 덜 먹고 배를 비워놓아야 했다. 보통날에는 떡볶이와 어묵 국물을 시켜 먹었다.
사실 어묵 자체는 잘 안 먹고 국물만 먹었는데 그 이유는 어느 날 친구가 기발한 레시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떡볶이 국물과 어묵 국물을 섞어서 먹으면 뭔가 오묘하면서도 칼칼한 맛의 국물로 변하기 때문이다. 어묵 국물 한 스푼을 떡볶이 국물에 섞어서 한 입 먹어보면 꽤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떡볶이와 어묵 국물을 먹고 나와서 바로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편의점에서 항상 먹는 라면이 있었는데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친구와 같은 라면으로 먹었다. 처음에는 ‘친구라면’을 먹다가 치즈콕콕이랑 스파게티 콕콕을 즐겨 먹었다. 그리고 다른 라면들도 먹다가 마지막 즈음에는 참깨라면을 매일 먹기도 했다. 그리고 후식으로는 더위사냥 커피맛을 먹었다. 어렸던 우리는 커피맛인지도 모르고 커피를 마실 줄 안다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런 카페인도 없었을 텐데 괜히 더위사냥을 먹고 나면 잠이 깬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한참 먹고 나서 집에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무엇을 먹었는지 어땠는지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그리고 그때는 학교랑 집이랑 조금 멀어서 먹고 집에 돌아갈 때 즈음에는 다시 배가 고파져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다시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지 기대하며 부모님이 퇴근하시기를 기다렸다.
그 정도로 나는 음식을 좋아했다. 먹기 위해 살정도로 음식을 즐길 줄 알았다. 그렇게나 음식은 나의 삶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앞에 나온 질문에서 음식을 살기 위해 먹는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지에 대한 답은 항상 같을 것이다. 나는 음식이 주는 향수와 추억을 위해 먹는다. 살기 위해 먹기보다는 그리고 먹기 위해 살기보다는 음식이 주는 추억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음식을 먹는다. 10년 뒤, 20년 뒤 오늘날의 음식을 생각하고 추억하기 위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