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알기까지
누군가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기는 할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삶의 한 조각조차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의 삶도 알지 못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과거에 일어난 일들도 각색하고 덧붙여 기억하기도 한다.
그러니 더더욱 다른 사람들의 삶은 알지 못하겠지. 나를 완전히 이해하기까지, 나를 완전히 받아들이기까지 만고의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면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열 배, 스무 배의 노력을 들여야 겨우 발끝이라도 미칠 수 있을 거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른다.
대학교 1학년, 푸릇푸릇한 신입생이던 나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같은 유학생이기도 하고 말도 잘 통해서 환영회에서 번호를 교환했는데 그렇게 가끔 연락하고 지내게 되었다. 언젠가는 그 친구에게 한국 과자를 주려고 친구 기숙사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내 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압도당한 기억도 난다.
유학생들은 꼭 들어야 하는 필수 수업이 있어서 그 친구와 같이 듣게 되었는데 수업 때 옆에 앉아 각자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푸릇함과 싱그러움은 자연스레 내 마음속에 새겨졌기에 그때를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나 가깝게 지내던 만큼 멀어지기는 더 쉬웠고 1학기가 지나고 겨울방학을 보내고 나니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같이 듣던 수업도 끝나고 더는 만날 구실이 없었다고나 할까. 각자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삶을 이어나가던 우리는 간혹 캠퍼스에서 마주치면 인사만 하는 정도였다. 간단한 안부인사 후에 연명해 가는 우리들의 건조한 삶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볼 수 없었다.
분명 눈을 맞추고 이야기했지만 그 너머 서로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우리는 우리의 삶에 스쳐 지나가는 인연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친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내 기억에서 잊혀가는 친구였다. 되돌아보면 점점 말라가던 그 친구를, 피곤해 보이던 그 친구를 나는 애써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만큼 힘들었고 애써 적응해 가려고 발버둥 치던 때였으니까.
2학년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 관심도 없던 동아리에 들어가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야 했던 나는 불만 가득한 삶을 살고 있었다. 수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깊은 관계의 친구들을 사귀지 못했고 기숙사에서 혼자 점심 저녁을 먹는 게 내 유일한 낙이었다.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많이 피해 다녔다. 일부러 사람들 안 다니는 길로 돌아다니거나 동아리 행사에도 일찍 자리를 뜨곤 했다. 동아리 행사 전에는 항상 속이 안 좋았고 스트레스로 살도 조금 쪘다. 그렇게 나는 무미건조한 나날들을 보냈고 전혀 감사하지 못하는 태도로 나의 삶을 살아갔다. 그리고 그 친구와 가끔 동아리 행사 때 보고는 했는데 나는 애써 무시하며 먼저 말을 걸어올 때까지 피했다. 모든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품었다. 그렇게 우리는 멀어져 갔다.
내가 없던 그 친구의 삶에도 분명 변화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늘 함께한 저녁 식사자리에서 그 친구가 말해준 이야기는 분명 충격적이었다. 혼자 많은 짐을 지고 있었고 우리는 깊은 공감을 나누었다. 나는 나의 삶에 있어서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기에 항상 힘들었했다. 그리고 그 친구도 공감한다고 말했다.
단순하고 싶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우리는 아픔을 통해 깨달았다. 아프지만 청춘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성장통을 겪고 이제 우리의 어린 시절을 조금은 넓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분명 아팠지만 성장했고 많이 울었지만 그만큼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한참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절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공감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지금의 내가 신입생 시절의 내가 아닌 것처럼 지금의 그 친구도 그때의 그 친구가 아니다. 많은 경험을 통해 변했고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 어떻게 감히 내가 신입생 때의 기억을 가지고 그 친구를 판단하고 대할 수 있을까? 신입생 때의 그 친구를 이해하고 알았다고 해서 지금의 그 친구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친구는 이미 다른 사람인데 나의 얕은 이해와 지식으로 그 친구를 알 수 있기는 할까?
나 자신을 그리고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우리는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이해했다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해도 지금의 우리는 일주일 전, 한 달 전, 일 년 전의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은 계속 성장하고 변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성장하는 나를, 우리를 인정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변해버린 친구와 가족의 모습을 낯설어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예전의 친구, 가족의 모습을 생각하고 대하기보다 현재의 그들의 모습대로 그들을 대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