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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비주류를 뛰어넘다

나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알다

by 에이브 Ave Feb 15. 2025


        어느 한가한 오전, 카페에 간 나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주류와 비주류는 보통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영향력이 큰 세력과 작은 세력을 의미하곤 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이해했던 것 같다. 


        주류음악, 주류영화, 비주류음료 등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거나’ ‘즐기는’ 것들에 한해 나는 주류, 비주류로 부르곤 했다. 다른 한 편, 미국에서는 Major (다수)와 Minor (소수)로 주류인지 비주류인지를 구분 짓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어떤 조직이나 단체의 영향력의 크기를 비례하여 마이너 혹은 메이저 (주류 혹은 비주류)로 부르기 시작했다. 더불어 미국 사회에서는 단순히 사람들이 속해있는 조직이나 단체의 영향력이 크고 작은 것을 떠나 사람들의 인종, 언어, 생김새 등으로 구별 지어 메이저리티 혹은 마이너리티라고 부른다. 물론 단어 자체의 의미는 다수와 소수이지만 이 단어들이 ‘사용’되는 의미는 주류와 비주류이다. 

 [이제부터 어떤 의미로 단어를 사용하는지 이제부터 구분 짓기 위해 주류와 비주류를 이야기할 때는 ‘메이저’와 ‘마이너’로 지칭하고 소수와 다수를 이야기할 때는 ‘minority’와 ‘majority’로 지칭하겠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나의 지식이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의 뜻에 한해서는 내가 이해한 바로 majority와 minority의 본래의 의의와 조금은 다르게 사용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와 마이너로 사람들을 나누어서 표현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에게는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다. 

        Majority와 minority를 다수와 소수로 나눈다고 하기에는 그 기준점이 이제는 사람의 수가 많고 적고 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한 번도 마이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나를 메이저라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다수에 속해있다면 그 다수는 어떤 기준으로 다수인지, 내가 소수에 속해있다면 그 소수는 어떤 기준으로 소수인건지 절대적으로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나 자신을 메이저와 마이너로 구별 지어 카테고리화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세상에 의해서 사람들에 의해서 메이저가 되기도 하고 마이너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카페에서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는 ‘minority (비주류/소수)의 입장에서는 앞에 나서서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때 우리가 말한 minority는 유색인종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며 인종은 다수와 소수를 나누는 기준점이 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minority로 지칭하였는데 그 즉슨, 우리는 단순히 ‘소수’에 속한 것이 아니라 ‘비주류’에 속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은 ‘마이너’로 백인은 ‘메이저’로 속해지곤 하는데 나는 이러한 선이 어디에서부터 누구로부터 정해졌는가 궁금해졌다. 단순히 다수인지 소수인지는 이제는 중요치 않아 졌다. 누가 봐도 유색인종의 인구수가 더 많지 않은가? 그러나 유색인종이라고 해서 모두 다 마이너에 속한 것은 또 아니다. 인종에 따라, 피부색이 ‘더’ 있는지에 따라 마이너 중에서도 메이저와 마이너가 또 나눠지기도 한다. 


        물론 나는 사회가 나누는 주류와 비주류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본래 인간의 뇌는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카테고리화하기 때문에 인간들 스스로 인간사회의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는 것이 꼭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주류와 비주류의 단어에 대해서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인종, 피부색, 언어, 능력, 성별, 직업, 돈 등 우리가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기준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 기준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우리는 ‘겉모습’ 즉 보이는 것들로 기준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언어에서도 특유의 악센트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속해지는 부류가 달라지고 돈도 ‘더’ 있고 ‘덜’ 있는지에 따라 속해지는 부류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봐야 하는가? 그것 또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에 따라 또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게 된다면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글을 읽지 못해 정보를 습득하는데 제약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는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우리는 왜 주류와 비주류로 인간들을 나누고자 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어지는 걸 받아들이는가? 주류와 비주류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기준으로 우리는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고 있는가? 


        10년 전, 주류문화와 비주류문화에 대해서 한창 뉴스와 미디어가 보도했던 게 생각이 난다.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흔하게 즐기고 먹고 사용하는 ‘것’들이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어지곤 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주류사회 혹은 비주류사회로 나누어지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는 우리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고 있었을까? 주류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왜 그렇게 발버둥 치고 있는 걸까? 왜 나의 친구는 자기 자신을 ‘비주류’ 혹은 마이너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는 세상과 사회가 나누는 기준에 맞추어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인종과 능력으로 비추어봤을 때, 사회가 나를 비주류 혹은 마이너로 구분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누어지는 기준에 따라 majority (다수) 도 minority (소수) 도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누어지는 기준과 상관없이 메이저 (주류)도 마이너 (비주류)도 아니다. 


        나는 나를 ‘나’ 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언어와 나의 생김새와 성별과 인종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선망’하는 것이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의 가치를, 존재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 내가 나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있을 때,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기준은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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