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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원하는건

내가 책임질 수 있는선에서

by 에이브 Ave


어렸을 때는 사고 싶은 게 딱히 없었다. 무언가를 갖기 위해 돈을 모으거나 부모님을 조르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한 달 용돈을 받고 저금하고 소비할 돈을 항상 정해놓았기 때문에 정해진 금액 안에서 필요한 것을 사고 눈에 보이는 것을 샀다.


조금 머리가 컸다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스마트폰을 갖고 싶기는 했지만 때에 맞게 가지게 되어 꽤 만족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굳이 부모님께 사달라고 떼를 쓰지 않아도 조르지 않아도 자연스레 생기는 물건과 음식들이었기에 어렸을 때 못해봤던 것, 못 가져봤던 것에 대해서 불만이나 아쉬움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스레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한 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학교를 거쳐 한국 고등학교를 다니며 아무런 생각 없이 주어진 대로 살다가 유학을 왔다. 사고 싶은 게 없던 나는 주위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거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시기질투 한 적이 손에 꼽는다. 물론 중학생 때 친구가 초대해서 간 집에 엄마가 계시고 맛있는 요리를 해주시고 장난감도 이만큼 많아서 부럽기는 했지만 그때는 마냥 엄마가 집에서 맞아주시는 것이 부러웠던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유학을 온 나는 정말 오랜만에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 사용하는 물건, 먹는 음식 등 나는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시기질투했고 그렇게 불행이 시작되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부모님의 세심한 주의와 관심에 의한 것들이었다는 걸 유학을 와서 깨달았다. 부모님들은 자식의 눈만 봐도 무엇을 갖고 싶은지 어떻게 바로 아시는 걸까. 그렇게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던 부모님이 곁에 없으니 나는 사달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부러워하며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러나 항상 인생은 되돌아봤을 때 많은 것들이 보인다고 지금 뒤돌아 생각해 보니 그때도 알게 모르게 부모님께서 많은 걸 보내주시고 채워주셨다. 아직 고등학생이던 나는 부모님의 품 안에, 어른들의 보호아래 풍족한 삶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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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된 나는 부모님께 생활비와 용돈을 받는 것이 불편해졌다. 적어도 내 용돈은 내가 해결하고자 했다. 그것이 사람 된 됨됨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차가운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아직은 보호아래 있는 작은 사회일 뿐이겠지만 그래도 직접 돈을 벌어보니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용돈으로는 가볍게 살 수 있던 군것질거리와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이제는 가격을 비교하게 되고 정말 필요한가 수도 없이 끊임없이 물어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물가가 뭔지도 몰랐고 물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를 사더라도 정말 이 물건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묻고 또 묻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어갔다.


최근에는 주위 친구들이 사용하는 헤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의 헤드폰을 잠깐 써봤는데 노이즈캔슬링이 되면서 음향도 굉장히 좋았다. 새로운 신세계를 맛본 나는 지금껏 3년간 써오던 헤드폰이 눈에 차지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다른 친구도 헤드폰을 새로 장만하면서 나의 마음을 더 부추겼다. 수업 시간에 괜히 헤드폰 검색을 하고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20불 정도 되는 헤드폰은 금방 망가질 것 같고 부실해 보였고 40불 넘는 헤드폰은 나에게는 상당한 지출이기 때문에 고민스러웠다.


한때, 갓 대학교에 입학해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오는 즉시 고생한 나를 위한 보상이라고 말하며 이것저것 불필요한 것들을 사곤 했다. 그렇게 하나 둘 쓸모없는 불필요한 물건들이 방에 쌓이기 시작하며 나는 내 소비습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하나를 사더라도 오랜 고민 끝에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헤드폰에 뒤이어 곧 스포티파이 프리미엄을 결제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또 나에게 관건이 되었다. 광고가 지겹도록 나오고 듣고 싶은 노래를 듣지 못하기 때문일까, 온갖 변명거리를 만들며 헤드폰과 스포티파이를 결제할 구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나는 지금은 좋은 때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 보니 어릴 때나 지금이나 사고 싶은 마음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어릴 때는 갖고 싶은 것을 바로바로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사고 싶은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은 사고 싶은 것들이 많고 그러나 좋은 때가 아니기에 보류하거나 구매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사고 싶은 마음이 더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이런저런 고민들이 수면 위에 드러나는 시기가 어른이 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고민을 하기 때문에 어른이고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어른이다. 그리고 직접 일하고 번 돈을 지혜롭게 사용할 때 비로소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는 것 같다.

KakaoTalk_20250210_191332490_06.jpg 돈을 열심히 벌겠노라 결심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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