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집 <마루 밑 남자>는 2010년 온누리에 행복이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방구석에 처박혀 읽었던 그로테스크한 내용의 책이다. 또래들보다 뒤늦은 사춘기의 강을 지나면서 나는 음침함을 배경으로 깔고 살았던 것 같다. 연배가 있는 사람이라면 기억할만한 미국 드라마 <환상특급> 같은, 기발하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분위기를 공포스럽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한때는 스티븐 킹의 소설이나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에 열광했었다. <마루 밑 남자>를 쓴 하라 코이치의 소설 또한 가족의 본질과 사회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2007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야기가 2025년이 된 지금까지도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건 작가의 통찰력도 대단하지만 세상 참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육아를 위해 더 나은 환경을 고집하는 아내 때문에 도심에서 신도시 단독집으로 이사한 남자는 출근 시간만 2시간에 가깝다. 회사 일도 많아서 잦은 출장에 야근도 일쑤다. 며칠 만에 밤늦게 퇴근한 남자가 어느 날 자신의 집 마룻바닥 아래에 살고 있는 낯선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죽도록 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마루 밑 남자에 의해서 말이다. 아버지도 몹시 바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주인공의 아내처럼 양육을 비롯한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내가 경험한 부부의 삶이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보니 결혼이나 가족에 대한 로망은 일찌감치 접었다. 부러 냉소적으로 굴었던 건 아니다.
당신과는 소개로 만났는데, 영화를 하는 내 삶은 언제나 불안정했기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났던 건 아니었다. 주말이면 극장에 가거나 여행을 즐기는 공통의 취미가 있었지만 운명을 걸 만큼 강력한 페닐에틸아민이 터지지는 않았다. 이미 ‘너는 내 운명’의 상단 1번부터 3번까지 ‘영화’가 자리하고 있어서 내 삶에는 사실 결혼도, 2세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당신의 선한 눈이 좋았다. 만남이 진지해지면 으레 상대에게 바라거나 요구하는 게 있기 마련인데 당신은 자신의 생각 어떤 것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소소하게 데이트를 하던 중, 여름휴가철이 되어 우리는 바캉스를 떠나기로 했다.
강박적으로 파란색을 좋아하는 나는 바다에 대한 향수를 본능으로 타고났다. 나는 바다가 좋다. 백사장에 앉아 바다를 보며 촤르륵촤르륵 쏟아지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온갖 시름이 다 잊히는 것 같다. 파도가 근심 걱정을 함께 쓸어가면서 이제 다 괜찮다고 바닷바람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듯하다. 꽃바람 살랑이는 봄바다도 좋고, 끝없이 푸른 여름바다도 좋고, 풍요로운 가을바다도 좋고, 은빛 파도가 청량하게 부서지는 겨울바다도 좋다. 누가 내게 “어디 갈까?” 물어 온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바다로!”라고 외칠 것이다.
외갓집이 울진이라 여름방학만 되면 오빠와 이모들이랑 바다에서 물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5학년 땐가 타고 있던 튜브가 뒤집혀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는 다시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날 나는 사뭇 진지했는데 가족들은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고 배꼽 빠지게 웃었다. 그 기억은 마치 유체이탈을 한 내가 물속에서 버둥거리는 나를 바라보는 전지적 시점으로 남아있다. 스무 살이 넘어 수영학원을 다니며 극복해 보려고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날의 트라우마는 강력했다. 그래서 바다로 들어가는 건 포기했다. 보는 것만 좋아하기로 타협한 것이다.
당신은 나와는 다른 이유로 바다를 좋아했다. 수영을 못하는 나와 반대로 바다 수영을 조오련보다 한 뼘만큼 못할 정도로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특전사 출신이라 해상훈련으로 바다에서 전투수영을 배운 당신이기에 물에서는 물 만난 물고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바다를 좋아하는 각자의 이유를 가슴에 품고.
2014년 7월 30일, 우리는 태안에 있는 꽃지로 떠났다. 넓은 백사장으로 유명한 꽃지 해수욕장은 낙조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나서 꽃지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점심때쯤 도착하니 바닷물이 많이 빠져 있었다. 우리는 평상이 포함된 파라솔을 대여해 자리를 잡았다. 해수욕장이니 수영복으로 갈아입긴 했으나 나는 버릇처럼 평상에 드러누워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책을 꺼내 펼쳤다. 바닷물에 들어가기보다는 소설책이나 읽으면서 선글라스 너머로 드문드문 당신의 수영이나 감상할 요량이었다. 당신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아이스커피도 즐겼다. 이게 휴가지!
당신이 튜브를 빌려 왔다. 예정에 없던 이벤트였다. 바다로 들어가자고 손을 잡아 끄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척했으나 발바닥에 닿는 젖은 모래의 폭신폭신한 느낌이 좋았다.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물놀이를 하거나, 저 넘어 갯벌에는 눈을 박고 해루질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주변을 맴도는 갈매기 때도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이들을 풍요롭게 만드는구나. 파도와 함께 모래가 쓸려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면서 발가락을 간지럽혔다. 얼마 만에 피부로 느껴보는 바다인가. 바다 아래로 보이지 않는 자갈이나 바위가 있어 다칠 수 있다며 당신이 아쿠아슈즈를 챙겨 주었다.
끌어주는 튜브를 잡고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한 발 한 발 천천히 바다로 내디뎠다. 바닷물이 찰랑찰랑 허리춤에 닿았을 때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망설이는데, 당신이 나를 튜브에 태웠다. 당신의 단단한 어깨가 튜브를 끌어안는 순간 나의 코르티솔은 화르륵 타올랐다가 순식간에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었던가. 심장 뛰는 소리가 뇌에서 팡파르를 울렸다.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과 맞닿은 더없이 푸른 수평선에 아드레날린이 터져 나왔다. 파도의 출렁거림이 시인의 노랫말처럼 간지러웠다. 당신은 조금씩 천천히 튜브를 밀면서 바다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큰 파도가 수평선으로부터 밀려왔다.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꿀렁- 파도가 지나가도 튜브는 끄떡없었다. 이럴 수가! 나는 이미 파도를 타고 있었다. 신이 나서 눈을 떴는데 당신의 뒤로 강열한 햇살이 쏟아졌다. 눈부신 후광이 펼쳐졌다. 당신은 꽃지의 마린보이였다. 당신이라면 <마루 밑 남자>에 대한 공포쯤은 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동안 우리는 앞으로 안정적인 유대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비욘세의 <Halo>가 꽃지에 울려 퍼졌다. 찬란한 ‘당신의 광배’에 홀딱 반하는 순간이었다.
만조가 가까워지니 붉게 물든 바다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우리의 미래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