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가난이 일상이던 시절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자식 굶기지 않고 깨끗한 옷 입혀 공부시키는 것 만이 소명이라 믿었던 그 시절을 빠져나오니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자식들은 어느새 자라 머리 하나가 더 큰 어른이 되었고, 새 가족이 생겼고, 바빴다. 엄마의 삶은 공허해졌다. 희생으로 점철된 엄마의 삶이 가여웠는데, 당신을 만나 결혼을 고민하는 순간 엄마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게 보였다.
문득 엄마가 만들어주었던 종이인형 생각이 났다. 유난히 크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여자 아이에게 엄마는 레이스가 달린 종이옷도 몇 벌 만들어 주었다. 문방구에서 샀을 친구의 화려한 그것들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종이인형으로 나는 몇 달을 행복했었다. 세상에서 엄마가 그림을 제일 잘 그린다며 물개박수를 치는 나에게 하얀 덧니를 드러내고 웃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보다 어리던 엄마도 꿈이 있었겠구나. 가난에 몸서리치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잊혔을 엄마의 꿈..
우체통에 꽂힌 미술학원 전단지를 뒤지다가 인터넷으로 아마추어 작가를 양성한다는 화실을 검색했다. 화실 다녀보라고 말로만 하면 엄마는 대답만 하고 평생 안 갈 사람이라 당장에 밀어붙였다. 촬영이 없는 날을 틈타 엄마의 손을 끌고는 마음에 들었던 화실로 향했다. 건물 앞에서 쭈뼛거리는 엄마를 등 떠밀고는 몇 개월치 카드 할부를 질러 버렸다. 화실을 둘러보니 엄마 또래 동지들이 몇몇 보여 안심이 되었다. 화실대장이라 불리는 원장님도 소심 예민한 엄마를 리드하기에 충분한 넉살이었다. 돈 아깝지 않으려면 열심히 배우시라고. 종종 숙제 검사 할 테니 차곡차곡 실력 쌓아서 보여주시라 엄마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머지않아 엄마의 등에 자그마한 날개가 돋았다. 고장 난 어깨도, 망가진 엘보도 잊은 듯, 엄마는 화실과 집을 날아다녔다.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머리 희끝한 화실 언니도 생겼다. 화실 언니에게 전화가 올 때면 목소리에서 ‘솔’ 음이 났다. 엄마의 첫 수업은 인물 소묘로 ‘사랑하는 사람 그려주기’였다. 가족들 얼굴을 순서대로 그리고 예비 사위의 얼굴까지 그려주었는데, 그림 모퉁이에는 세상 고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만날 누구 엄마, 누구 할머니로 살아오면서 잊혔던 이름 석자가 굳세게 자리 잡은 그림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연필로 그려진 나와 당신의 얼굴보다 당당한 엄마 이름이 좋았다. 이후로는 유화로 꽃과 과일을 자주 그렸는데, 온갖 시름으로 웃어도 울상이던 엄마 얼굴에 꽃이 피었다. 캔버스에나 있던 화사한 꽃이 엄마 얼굴에서 피어났다.
엄마랑 단둘이 바다여행도 다녀왔다. 원래 큰일을 치르기에 앞서 의식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지금은 없는 외갓집이 울진이어서 나는 바다에 대한 향수를 본능으로 타고났다. 우리는 오랜만에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동해로 내려갔다. 기차가 빨라진 덕분에 사이다에 삶은 달걀 까먹던 시절의 낭만은 사라졌지만, 휙휙 지나가는 창밖을 안주삼아 수다 떠는 재미는 여전히 좋았다. 로컬이 좋은 건 신선 함이라며 저녁에는 회도 먹었다.
다음날 아침엔 묵호등대가 있는 논담골길을 걸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펼쳐진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엄마를 닮았다. 엄마는 바닷가에서 놀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소리 내어 웃었다. 눈빛이 윤슬처럼 빛났다. 바다를 끼고 달리는 7번 국도를 따라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송정해수욕장에서 당신을 만나 셋이서 시끌벅적한 밤을 보냈다. 바다를 배경으로 엄마의 독사진을 찍어 주었다. 전공자로 그렇게 많은 촬영을 하면서 엄마를 주인공으로 찍어본 기억이 없었던 것에 늘 마음이 아팠다. 사진 속 엄마는 우아했고,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내 걱정보다 그림 얘기로 수다스러워진 어느 날, 나는 삼십 대 후반의 나이에도 끊어내지 못하던 엄마의 탯줄을 끊을 기회를 엿보았다. 엄마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던 나의 빈자리가 더 이상 엄마를 침전시키지 않게, 엄마의 여생을 자식손주가 아닌 오롯이 ‘자신’으로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내가 당신과의 보금자리로 떠난 뒤, 자식 냉장고 채워 줄 밑반찬 따위는 잊어버리고 캔버스 앞에 앉아 온종일 붓을 들고 그림 생각만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엄마랑 내가 시간을 내어 만났을 때 서로의 안부는 조금만 묻고, 화실 얘기, 그림 자랑, 전시회 준비 같은 이야기들만 하자고. 죽기 전에 내가 그리고 싶은 거 다 그릴 수 있으려나 하는 엄마의 한숨을 상상하며 미처 끊어내지 못하고 애써 붙들고 있던 기나긴 탯줄을 잘랐다.
엄마의 넘치는 사랑으로 풍요로왔던 나의 유년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