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by E Hana

사람들은 종종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닥뜨리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가 되면서 아주 쉬운 것도 떠오르지 않아 막막해지곤 한다. 나 또한 119에 전화하면서 ‘119가 몇 번이었지?’라고 되묻고 있었다.


“아기가 울음을 멈추지 않아요.. 10개월입니다.”


오전부터 아이 몸에 두드러기가 생겨 소아과에 다녀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덕소에 살아서 동네에 병원이 많지 않았다. 일요일이라 집 근처에 문을 연 소아과가 없어, 전에 장 보면서 소아과 진료를 함께 보았던 구리에 있는 대형마트 내의 병원으로 갔다. 대기 시간만 1시간이 넘었다. 넘치는 환자들로 공기 중에 병원균이 넘쳐나는 듯했다. 병 고치러 왔다가 되려 병을 얻어 갈 것 같다는 생각에 미쳤을 때 아이 이름이 불려졌다. 항히스타민제가 처방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약을 먹고는 잠시 가라앉는가 싶더니 저녁이 되면서 상태가 점점 심각해졌다. 괴로운지 아이는 몸을 뒤틀다가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몹시 당황했다. 당신은 출장으로 강릉에 있었기에 집에는 나와 아이 둘 뿐이었다.


난생처음 119에 전화를 했다. 아이 상태를 설명하는데 목소리가 자꾸만 갈라졌다. 이내 출동한 대원이라며 다시 전화가 왔다. 아이 상태를 재차 확인하고는 구조가 용이하게 현관문을 열어 놔 달라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었다. 창밖으로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마자 나는 아이를 안고 뛰어 나갔다. 구급대원은 아이를 보자마자 아나필락시스를 의심하는지 구리의 한양대학병원 응급실로 서둘렀다. 좀처럼 진정이 안 되는 ‘10개월짜리 아기’를 눕힐 수가 없어 나는 아이를 안은 채로 침대에 기대앉았다.


이른 장맛비에 도시로 들어가는 길은 끈적하고 질퍽거렸다. 아이의 얼굴은 베이킹파우더를 넣은 빵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구급차 지붕으로 부딪히는 빗소리가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울다 지친 아이는 엄마 품에서 잠이 들었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빗길을 뚫고 요란스럽게 달렸다. 구급대원의 다급한 마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뭘 잘못 먹였나. 못 본 사이 아이가 무엇을 삼킨 건 아닐까. 내가 이 어린것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죄인이 된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은 이미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시간은 48분의 1초 단위로 흘렀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만 하루가 지난 것처럼 느껴져 몇 번이고 시계를 확인했다. 혹여 의사에게 너무 늦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여기저기 바늘을 꽂고 가는 숨을 팔딱이던, 세상 무엇보다 조그맣던, 그 시절의 아이가 떠올랐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어느 아이보다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 때로 아이는 엄마보다 강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부끄러웠다.


어느새 엄지손톱만 한 두드러기가 아이의 눈두덩이와 입술, 뒷목까지 퍼져 있었다. 응급실 의사가 수액을 주사하려고 혈관을 찾는 동안 아이는 또 울음이 터졌다. 가슴이 찢어졌다. 버둥거리는 아이를 가슴에 품고 ‘엄마가 미안해’를 수십 번 더 속삭였다. 어서 의사가 혈관을 찾아 주기를 바랐지만.. 결국 아이의 발등에 주삿바늘이 꼽혔다.


주사약 덕분에 증세는 호전되었지만 밤새 호흡곤란이 올 수 있어 아이의 입원이 결정됐다. 친정엄마가 달려왔고, 출장 중인 당신이 빗길을 뚫고 강릉에서 올라왔다.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이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뱃속에서 다 자라지도 않은 아이를 낳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가던 문 앞에서 마주한 당신의 얼굴. 그런 당신을 보니 나는 그제야 눈물이 났다.


구급차에 실려 정신없이 온 탓에 분유를 챙기지 못해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부랴부랴 집에 다녀왔는데, 아이는 또 엄마를 찾아 한 시간째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단다. 맙소사! 아이보다 친정엄마가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간신히 아이를 달래어 입에 젖병을 물렸더니 배가 고팠던지 눈물이 그렁한 채로 허겁지겁 젖병을 빨았다. 엄마가 칠칠치 못해 아이를 또 굶겼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잠든 아이가 입은 환자복이 커서 소매와 바지를 둥둥 걷어 올리니 작고 뽀얀 손발이 드러났다. 주삿바늘이 꽂힌 발을 쓰다듬고 있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걸 억지로 참았다. 친정엄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늦은 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주 앉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당신은 그저 아이만 바라보았다. 토닥토닥 쓰담쓰담은 다음에 받기로 하고 어서 집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의 아침 출근을 위해서. 우리 가족 모두의 안녕을 위해서. 당신도 집으로 보내고는 나는 아이 옆에 새우처럼 누워 눈을 감았다.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온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내 마음속에 고요가 퍼져나갔다.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날이 밝았다. 아이는 빠르게 회복했고 평소처럼 내게 매달려 엄마엄마하며 까르르- 웃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엄마’였다. 세상에서 이 아이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엄마..


병원 밖은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이는 떨어지는 빗방울이 신기한지 침대 난간에 기대어서는 창밖을 감상하고 있었다. 창밖을 내려다보며 사색하는 ‘10개월짜리 아기’의 뒷모습이란! 이 아이는 내게 이렇게 뜬금없는 감동을 준다. 몇 년 전에 읽은 스져춘의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이 생각났다. 후드득후드득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우산을 쓰고 가는 것을 좋아한다는 주인공에게 장맛비 내리는 저녁은 무료한 일상을 탈출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나는 아이의 시선에 맞추어 창밖의 비 오는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어수선하고 부산스럽던 어제와는 달리 병원 앞은 차분하고 한가로웠다. 우산을 쓴 엄마 앞으로 우비에 장화까지 신고 물웅덩이에서 첨벙거리는 꼬마 아이가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몸에는 아직 두드러기 자국이 빨갛게 남아 있었다. 아이의 병명은 혈관부종이었다. 원인 불명의 혈관부종은 앞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증상이 심하거나 호흡곤란이 동반되는 경우 사망까지 이를 수 있으니 2~3시간 이내에 반드시 내원하라는 교수님의 당부를 들었다. 아이는 하루만 더 지내고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도 받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를 재워놓고 당신의 토닥토닥 쓰담쓰담과 함께 맥주캔을 뜯으며 미뤄둔 <왕좌의 게임>을 정주행 하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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