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획을 쓰고 버린다

by Bosu Jeong

신년이 되면 계획을 세운다.

노트를 사고, 목표를 적고, 다짐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예전의 나도 그랬다.

연초에 쓴 계획을 몇 달 뒤 다시 보면

대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직 못 했네.”

“이건 아예 방향이 달라졌네.”


계획은 점점

동기부여가 아니라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계획을 남기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일주일에 한 번, 많아야 30분.

종이 한 장을 꺼내서 세 가지를 쓴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3년 후의 나와 회사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숫자를 정하지 않는다.

날짜도 적지 않는다.

그냥 그림만 그린다.


“3년 후에도 이 회사를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일하고 있으면 좋겠다.”

“아직도 저녁은 집에서 먹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다 쓰고 나면,

그 종이를 버린다.


저장하지 않는다.

파일로 남기지 않는다.

노트에 썼다면 찢어서 버린다.


처음엔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느꼈다.

계획을 세우고 바로 버린다니.


하지만 해보니 이유를 알게 됐다.

남겨두면, 거기에 매달리게 된다.


몇 달 전의 나,

몇 년 전의 나가 쓴 계획에

지금의 내가 설명을 해야 한다.


“왜 아직 못 했지?”

“왜 계획이 바뀌었지?”


계획이 기준이 되는 순간,

현재는 죄책감이 된다.


버리면 그런 일이 없다.

다음 주에 다시 쓰면 된다.

그때의 나에게 맞는 계획을.


신기하게도,

정말 중요한 것만 반복해서 남는다.


매주 비슷한 문장이 다시 적힌다.

“이건 아직 중요하구나.”

“이 방향은 변하지 않았구나.”


반대로 한 번 쓰고 사라지는 것들도 있다.

괜찮다.

그건 지금의 내가 굳이 붙잡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이건 할 일 목록과도 다르다.

체크하지 않는다.

완료 표시도 없다.


해야 할 일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방향을 확인하는 시간에 가깝다.


그래서 부담이 없다.

실패도 없다.

그냥 지금의 나를 점검하는 과정이다.


창업을 하다 보면

매일 눈앞의 문제에 쫓긴다.

고객, 일정, 사람, 자금.


그 와중에

잠깐 멈춰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지 않으면

바쁘게 움직이다가도

방향을 잃기 쉽다.


계획을 쓰고 버리는 습관은

나에게 그런 멈춤을 만들어줬다.


이 방식이 정답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에게는

계획을 잘 지키는 것보다

계속 방향을 다시 묻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올해도

나는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버릴 것이다.


그 대신,

다음 주에 다시 쓸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지금보다 조금 더 솔직한 계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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