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캔버스, 선택은 나의 붓

나의 생각은 나의 인생이다.

by 김진산

6장. 인생은 캔버스, 선택은 나의 붓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그 경험이 가장 잔인한 선생님이다."
"Men learn when they are taught by experience,
and experience is the harshest of teachers."

키케로 (Cicero)


선택, 운명의 갈림길에서 길을 묻다

예측 불가능한 삶의 매 순간, 우리는 수많은 선택과 마주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대안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익숙한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미지의 숲으로 뛰어들 것인가? 멈춰 설 것인가, 아니면 험난한 산을 오를 것인가? 매 순간의 선택은 현재를 규정하고,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직접 부딪히고 깨지며 겪어내는 경험은 그 어떤 현란한 가르침보다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어 우리를 성장시킨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현명한 선택을 돕고, 오늘의 용기 있는 선택은 내일의 소중한 경험을 창조하는 선순환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이라는 드라마의 진정한 주연이 될 수 있다.


경험이라는 이름의 강요

내가 십 대 후반의 두 아들에게 처음으로 등산을 제안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왜 힘들고 위험한 산에 억지로 올라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땀 흘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산행의 가치를 직접 경험으로 깨닫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정상에 오르면 좋아하는 게임 시간을 1시간 더 늘려줄게”, “힘들겠지만, 아빠 믿고 함께 등반하면 용돈

줄게”와 같은 달콤한 회유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는 것은 자식들에게 얄미운 아빠로 낙인찍히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게 세상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더 컸다.

돌이켜보면, 당시 주변의 다른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이 산에 가는 것을 무척 위험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등산 경험을 통해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한 나의 아이들은 이제 다른 사람들이 왜 산행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는 간접적인 정보나 학습된 두려움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과장된 것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섣불리 판단하거나 단정 지을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된 아들들은 운동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억지로 운동을 시키는 대신, 나는 아들들에게 팔굽혀펴기 시합을 제안하며 내기를 걸었다. 나는 틈날 때마다 사무실에서도 팔굽혀펴기 연습을 하며 아이들과 대등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1년 동안 치열하게 서로 이기고 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들들은 서서히 운동의 재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근육이 붙고 몸이 변화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운동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자식들이 운동에 빠져서 새벽에 일어나 헬스장에 다니고 나에게도 함께 운동하자고 졸라대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인생을 살다 보니 학교에서 책으로 배우는 지식보다 직접 몸으로 겪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물론, 책을 통해 얻는 간접 경험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직접 발로 뛰고, 땀 흘리며 얻는 경험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 삶의 지혜와 통찰력을 길러준다. 어렵고 힘든 경험은 당장은 그 의미를 알기 힘들지라도, 언젠가는 피 속에 녹아들어 스스로를 돕는 귀중한 자산이 된다. 삶의 모든 경험은 우리라는 한 인간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술,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가르치다

내가 열 살쯤 되던 해의 어느 날, 시골에서 올라오신 할아버지께서는 갑자기 어머니에게 술상을 준비하라 이르셨다. 그리고는 어린 손자인 나를 마주 앉히고 직접 술을 따르게 하셨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준비하신 술은 막걸리였다. 약간 달달하면서 구수한 막걸리 향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두 잔 술을 조용히 음미하시던 할아버지께서는 나에게도 술잔을 건네며 막걸리를 따라주셨다. 그러면서 술을 따를 때는 반드시 두 손을 사용해야 하고, 어른에게 술을 받을 때 역시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잔을 받으며, 술을 마실 때는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려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술자리 예절에 대해 엄격하게 가르치셨다. 열 살 어린 사내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할아버지께서 시키시는 대로 홀짝홀짝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술기운이 올라 몸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의 우렁찬 기침 소리가 귓전을 때렸고, 몸을 더 심하게 흔들거리면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머리통을 톡톡 건드리셨다. 어린 마음에 취기로 인해 두 손도 떨리고 정신도 혼미했지만, 숟가락 소리에 정신을 바짝 차리려 애썼다. 어머니는 밖에서 “아버님, 어린아이에게 너무 술을 많이 먹이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며 걱정스럽게 만류했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요지부동이셨다. 오히려 “사내 녀석이 어릴 때부터 술을 좀 배워야 어른이 돼서 주사를 안 부린다!”라며 말씀 하셨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할아버지와 술을 마셨던 기억은 있지만, 아쉽게도 술자리의 끝이 어떠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정신을 차려 일어나 보면 늘 할아버지 방 따뜻한 이불 속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왜 할아버지께서 어린 손자에게 그 모진 주도(酒道)를 가르치려 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나 또한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논하는 어른이 되고 보니, 이제는 할아버지의 깊은 뜻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는 술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 덕분인지, 나는 술자리에서 좀처럼 흐트러지는 일이 없다. 자주 가는 술집 사장님은 “사장님은 도대체 언제 한번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실 겁니까? 술을 아무리 마셔도 끄떡없으시니 재미가 없어요!”라며 농담을 건네곤 하신다. 나는 술을 육체적인 즐거움이 아닌 정신적인 수양의 도구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술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과 예절을 배운 셈이다. 나 또한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술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억지로 술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 성장의 마중물

초등학생이었던 두 아들을 추운 겨울날 해병대 캠프에 보낸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아들에게 너무 가혹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을 훈련소에 데려다주고 차가운 표정으로 버스에 태워 돌아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솔직히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는 것은 부모로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되뇌면서도, 고생하고 힘들어할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캠프에 갔다 오면 정말 멋진 선물을 줄게!”, “이번 기회에 소풍 가는 기분으로 즐겁게 지내다 와라!” 하며 아이들을 애써 달랬다.

아직까지도 나의 선택이 과연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그 특별한 경험이 아이들의 인생에 작게나마 긍정적인 자산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 선택의 연속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고 이끌지만, 자녀가 성장할수록 부모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자녀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영역이 점점 더 많아진다. 특히 성인이 되면 자신의 삶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해야만 한다. 그때부터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 또한 오롯이 자신이 져야 한다. 살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선택의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와 같은 속담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결국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는 자신의 경험과 지혜, 그리고 직관에 달려 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에 있는 C(Choice, 선택)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명언은 인간의 삶이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현대에 와서는 ‘C’를 CHALLENGE(도전)와 CHANGE(변화)라는 표현으로 확장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표현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수많은 선택과 도전, 그리고 변화의 과정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 진리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며, 얼마나 유연하게 변화에 적응하고 대처하느냐가 개인의 성공과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과거에는 선택의 자유가 제한적이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이제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지식과 지혜를 얻는 자만이 누구보다도 앞서 갈 것이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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