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매해 외로움을 느낀다.
첫 성인이 되던 겨울, 바다 위에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이 플래시백 되어 떠오른다.
그때에 나는 항해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을 주력으로 다니는 화물선의 항해사로 근무했다.
성인이 되던 해 1월 1일에 5살부터 쭉 친구였던 동창들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그들 중 대다수는 서로의 부모님끼리도 친구인 경우가 많다.
전교생이 많아봐야 40명이 넘지 않는 시골학교였고 고향을 떠나지 않은 어른들의 자식은 자연스레 또 친구가 되었다.
영상통화 속 동창들은 성인이 된 기념으로 호프집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소위 스즈끼(작업복)라고 불리는 상하의가 합쳐진 방한복을 입고 전화를 받았다.
괜찮은 척을 하며 가벼운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었는데 가장 친한 친구 녀석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나 --이랑 사귀어, 너는 알아야 될 것 같아서..."
대수롭지 않게 굴고 싶었는데 정타를 허용한 복싱선수처럼 5초간의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말했다.
"잘 됐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주위는 시꺼먼 바다가 배에 부딪히며 파도가 쪼개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떤 날은 파도가 치면 바닷속 플랑크톤이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형광색 물결이 친다.
그날은 그렇지도 않았다.
너무 캄캄했고 너무 추웠다.
어김없이 찬바람이 불던 몇 달 전 나는 각종모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각종 원데이클래스부터 온갖 운동모임, 보드게임 등등.
여러 가지 찾아는 봤지만 도저히 성미에 알맞은 모임을 찾지 못했다.
내 취미는 영화시청, 독서, 래퍼의 가사를 외워 따라 부르는 등이 있겠지만,
대외적인 취미는 항상 오래가지 못했다.
원래 무언가에 깊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성격이다.(여자까지도)
그중 어떤 당근 신규모임이 눈에 띄었는데 소규모인원,
여러 취미활동을 지향하는 모임이었다.
어쩌면 한 가지를 오래 하지 못 하는 나에게 잘 맞아 보였기에 가입신청을 눌렀다.
가입은 금방 되지는 않았다.
처음엔 당근 채팅으로 활동명(이름/나이/지역 순)을 정해달라 하더니 최종 가입까지는 이틀이 걸렸다.
쉬는 날 장소를 안내받고 그곳으로 향했다.
부평역 인근 카페였는데 어려 보이는 미모의 여성분이 살갑게 맞이해 줬다.
자리에 앉아 잠시간 서로를 소개하다 보니 수수한 매력의 여성분이 또 자리로 와 앉았다.
원래 총 4명이어야 할 모임은 사정이 생겨 자리를 못 하게 된 사람을 제외하고 3명만으로 진행됐다.
모두가 느껴봤을 처음 본 사람과의 대면, 어색한 자세와 표정.
다행히 그런 첫 만남을 타개하기 위해 모임장이 준비해 온 질문지가 있었는데,
총 10가지가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 대답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거기엔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가장 좋았던 것' 같은 감성적인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현실주의자인 나에겐 어려운 것들이었지만 의외로 좋은 느낌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하며 과거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비록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를 포장하는 대답으로 가득했지만...
두어 시간이 지나고 만남을 인증하는 사진을 찍어야 했다.
4명 단위, 몇 개의 팀으로 운영되는 이 모임의 총모임장에게 모임 사실을 인증하는 절차라고 했다.
몇 달에 한 번은 모든 팀이 모여 회식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어색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왔다.
얇은 옷차림인 날 걱정하는 둘에게
'근처에 차가 있어서 괜찮아요'
라고 일축하며 역 건너편의 공영 주차장에 주차된 차에 앉았다.
차에서 15분여를 그냥 보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내가 혼자가 아님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