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
나는 모태신앙이다.
어머니는 내 가장 오랜 기억 속에서도 꾸준히 교회를 다니셨다.
매주 수요일은 새벽마다 3시쯤 교회로 혼자 다녀오셨는데 나는 그걸 따라가겠다고,
무조건 깨워서 데려가라고 떼를 쓰다가 결국 교회에서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집에 가자고 생떼를 부려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는데 '루프스'라는 희귀병에 걸렸었다.
최근에 아버지를 통해 어머니의 사인이 병이 아닌 자살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아마도 병에 의한 고통이 너무 심하고 가임기 여성 특유의 호르몬 분비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이었던 걸로 추측한다.
모임 사람들과 친밀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외계인 얘기를 하며 토론을 했고, 어떤 날은 영화를 추천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 번은 물리학과 대학원생이 약속장소에 오다 '도를 아십니까'를 만났다며,
교회전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상을 내비쳤다.
내가 활약할 차례였다.
스마트폰에 이런 철학적 논쟁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둔 글이 백개는 된다.
내 주장은 두 개였다.
1. 성경의 인문학적 접근
- 선악과 얘기는 '선택과 책임' 혹은 '자유의지에 대한 인류의 고뇌'라고 대입하여 이해해도 좋음
- 구약성경에 유독 죄를 심판 내용이 많은 것은 '선행'을 강조하려는 노력
2. 교회가 맹목적 믿음을 강조하게 된 이유
- 선행을 강요받는 바쁘고 가난한 민중에게 '예수'가 믿음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
혹시나 해서 말하자면 나는 무신론자다.
교회도 이제는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철학 논쟁을 좋아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존경으로써 교회를 변호했다.
상대는 설명에 납득한 듯 보였다.
그날 밤은 스스로 너무 만족스러워서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내가 했던 말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되풀이했다.
어떤 날은 모임장이 어릴 적 친구를 따라 이상한 교회를 갔던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거기서 샤워가운 입고 샤워기 물 맞으면서 세례를 받았는데 너무 이상해서 한 번 가고 안 갔어요”
반대로 나는 어릴 적 너무 신기한 경험을 이야기로 보탰다.
여름철 교회 수련회에 참여했었는데,
그곳에서 원 모양으로 빙 둘러선 다음 목사가 한 명씩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다.
이것을 안수 기도라고 한다.
그러면 예외 없이 뒤로 기절하듯 뻣뻣하게 넘어지는데,
나는 한 명씩 쓰러트리며 내게 다가오는 목사를 보며
‘나는 안 넘어가면 어떡하지, 목사님 무안할 텐데..’
하며 걱정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저도 뒤로 넘어갔어요”
모임원들은 모두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그중 물리학과 대학원생의 말이 기억나는데
“그런 일을 겪고도 교회를 안 믿었어요?”
“네 안 믿었어요”
모임장이 아는 언니에게 이 모임의 소식을 얘기했다고 한다.
심리상담가이며 본인이 평소 자주 대화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지옥 판사들, 지들이 뭔데 나를 평가하냐고 했던 것' 같은 얘기를 했더니 흥미로워했다고 한다.
모임원들은 그분을 여기로 한 번 초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물리학과 대학원생이 선창을 하자 모임장과 평소 말 수가 적었던 수수한 여성도 즉각 ‘좋다’고 호응하며 초대가 성사됐다.
바로 다음 주 그 심리상담가가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미술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어 보였고 어쩌다 내가 꺼낸 얘기인 '인간실격',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도 알고 있는 걸로 보아 문학에도 지식이 많아 보였다.
다만, 모임이 마칠 때까지 수수한 여성은 나오지 않았는데 모임장은
"그분이 집에 일이 생기셔서 당분간 참여가 힘들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셨어요"
라고 했다.
어찌어찌 모임은 다시 4인체제를 유지하며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또 한 주가 지났다.
물리학과 대학원생이 다시 불참을 선언했다.
3명만 모여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역시나 심리상담에 관련한 얘기가 나왔다.
'우리가 평소 쓰는 표현에서 형용사를 얼마나 다양하게 쓰는지가 중요하다는 것'
이제는 나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조금씩 얘기할 수 있었는데,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에서 나오는 표현을 예시로 들며 반박했다.
'줄지은 야자수와 수평선이 무한대 거리의 한 점에서 만나고 있었다'
너무 감명 깊게 읽은 대목인지라 외우고 다니는 몇 안 되는 문장이다.
형용사를 쓰지 않고도 풍부한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하퍼리 - 앵무새 죽이기'의 등장인물인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의
'말에서 모든 형용사를 지우고 나면 오로지 진실만이 남는다'
는 문장까지도 말하려다가 다시 삼켰다.
이때쯤부터 나는 모임장에게
'집까지 차로 바래다줄게'
라는 말을 언제쯤 꺼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