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모임에 나갔을 뿐인데 6

심증

by 황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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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입장 30분 전 카페에서 미리 만나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서니 둘은 작은 종이에 각각 무언가 쓰고 있었다.

내가 봐도 되냐고 묻자

"안 돼~"

라고 하기에

"나도 뭐라도 쓰게 종이 하나 주세요"

라고 했다.


- 성선설 -

'사람의 손가락이 열 개인 이유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몇 달 동안

은혜를 입나 세어보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외우고 다니는 몇 안 되는 시를 써서 심리상담가에게 줬다.

대화를 통해 그녀가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들이 시를 보며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며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진짜 그럴 리가 있나'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둘이 종이에 쓴 내용은 나에게 쓴 편지였는데,

번호를 교환했을 때 내가 얼마 전 생일인 것을 알았다고 한다.

늦었지만 선물과 함께 편지를 썼다며 내게 전했다.

나는 편지를 천천히 읽고 감동과 감사를 전했다.

솔직히 감동받지는 않았지만.


토론회 장소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모임장은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는데 꽤 긴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장은 설명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있었다.

대략 40~50명은 돼보였고 강단엔 진행자가 서있었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 안경을 썼다는 점 정도였다.


빔 프로젝트가 강단에 빔을 쏜다.

스크린에 한 문장이 새겨졌다.

'창세기 1장 1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

욕지거리가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겨우 참았다.

'결국 이럴 줄 알았다?' 아니 '진짜 이럴 줄 몰랐다'

토론회의 정체는 성경토론회였다.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거슬리는 모든 것을 스마트폰에 메모했다.

강의제목, 수업내용, 쓰는 단어(사탄을 사단이라 표기, 디지털 디톡스라는 표현)

'그래 최소한 사이비만 아니면 참아줄 수 있다'

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 이단을 심문할 정보들을 정리했다.


디지털 디톡스는 잘 못 사용하면 세뇌의 준비과정 중 하나다.

마술사 데런 브라운도 실험대상에게서 외부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단이라는 표현도 모태신앙인 나에게 너무 낯설었다.


찌라시팀과 말씀팀으로 나눠 진행자를 설득시키는 게임도 했다.

찌라시팀은 콘서트 티켓을 구했으니 가자고 했고,

말씀팀(나도 속한)은 그걸 못 하게 막아야 한다.

어린이집을 방불케 하는 토론이 펼쳐졌다.

"네가 --보다 더 소중해~"

"우리 같이 말씀 공부하자~"

왜 콘서트를 가면 안 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는 나로서는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근데 왜 콘서트를 가면 안 되는 건데요?'

라는 말을 일발 장전했다.

내 장전소리가 진행자에게도 들렸는지 진행자가 나에게 말을 요구했다.

'상대의 체면을 고려하는 마음'

젠장 난 너무 약해빠졌다.

농담이랍시고

"그냥 같이 가시죠"


멀리 조금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진행자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 이거 아닌데 큰일 났네'

어색한 기운이 장내에 감돌고 나는 어정쩡한 자세와 표정으로 물러났다.


이외의 수업내용은 의외로 좋은 의미로 진부했다.

대부분 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교회에서 배웠던 내용들이었고 약간의 추억을 자극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니 강사가 우리 테이블로 와 내게 안부를 물었다.

"처음 오셨는데 수업은 괜찮으셨어요?"

안 괜찮았다고 했다.


모임장은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했다.

건물에서 나와 햄버거집으로 향하며 뒤를 돌아봤다.

3층 간판엔 성전ㅇㅇㅇ라는 낡은 간판이 걸려있었는데,

나는 성전이라는 단어를 출퇴근길 구월동을 지날 때마다 자주 목격한다.


'신천지예수장막증거성전'


상념에 빠진다.

내가 있던 수업공간이 3층이었는지 4층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햄버거집에선 오늘의 후기를 조금 나눴다.

모임장은 아까 수업장소로 향하는 계단을 오를 때 내가 했던 얘기가 감동이라고 한다.

"서로 지지해 보자"

분명 그리 말했던 것 같다.

복잡한 와중에 설명충 본능을 버리지 못하고 人 사람인은 서로 지지하는 모양이라고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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