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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직장러 Jan 24. 2023

무사히 명절을 보냈습니다.

초보남편

평소에는 한없이 관대하던 아내가 명절이 다가오면 올 수록 무척이나 예민해집니다. 이제 결혼 10년 차도 넘어가고, 애도 제법 컸고 하니 시댁 식구들과도 편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불편한가 봅니다.


결혼 후 처음 시댁을 방문했다가 친정으로 올라오는 길에는 한참을 싸웠었습니다. 왜 오빠네 부모님은 그렇게 얘기하시느냐, 오빠는 왜 그렇게 반응하느냐 등등 제가 생각하기에는 별거 아닌 것들이지만 아내가 듣고 보기엔 불편했던 이야기들과 행동들로 이혼을 하니 마니 하며 수시간을 소리를 지르며 운전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른 분들도 이런 비슷한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시죠?^^;


결혼 후 첫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서 아내는 여느 시골의 며느리와 마찬가지로 시댁식구들의 아침 준비를 위해 일찍이 일어나 시어머니와 함께 아침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오랜만에 집에 가기도 했고 장시간 운전에 따른 피로가 있기도 하다 보니 오랜만에 늦잠을 잤습니다. 결혼 후 첫 명절이라고 해도 평소에 이야기를 별로 나누지 않던 부모님과 굳이 할 이야기도 없고, 그렇다고 부엌에서 할 일도 없는데 뭐 하나 싶어서 늦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밥 먹으러 나가보니 아내가 뾰족한 표정을 하고 있더라구요. 친정에서는 하지도 않는 부엌일을 해서 기분이 상했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직은 관계가 어색한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아침을 준비하면서 불편하게 분위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합니다.


당시에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지요. 저는 편한데 아내는 왜 그럴까 그러면서요. 그런데 이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었죠. 제 생각이 짧기도 했구요. 당연히 저는 저의 부모님이나 시댁이라는 공간이 편하지만, 저의 아내는 다 낯설고 불편할 텐데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이죠. 나중에 이야기를 하면서 아내의 당시 기분이나 불편함을 이해하고 나니 너무 미안하더군요.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명절 내내 쌓이다 보니 아내는 첫 명절 때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결혼을 해서 하나의 가정을 온전히 이루었으면 한 명의 온전한 성인으로 부모님을 대해야 하는데 저는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편하게만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이 저 하나 믿고 시집온(?) 아내에게 얼마나 남편으로 가장으로서 신뢰를 주지 못한 모습인지 깨닫고 나니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솔직히 여전히 부모님을 잘 챙기고, 어른처럼 행동하는 것이 쉽거나 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아내의 바람대로 이왕이면 장남답게 든든하게 가정의 대소사를 챙기고, 어른들을 어른답게 모시는 것도 아직은 쉽지 않습니다.


아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장모님 장인어른께서는 당연히 그 시대 여느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정성으로 모셨지요. 아내에게 전해 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보통(?) 어른들은 아니었습니다. 장모님께서는 시집살이를 꽤나 하셨지요. 그래서 아내의 마음 한 구석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어른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등에 대한 것은 생각 속에 깊이 박혀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에게 시부모님께 안부전화 드려라, 요즘 별일 없으신지,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자주자주 여쭈라 합니다. 아내가 말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연락을 드려보면 참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목소리와 표정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가능하면 아내가 말하기 전에 안부를 여쭈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런 저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아내 덕분에 온전한 한 명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아내에게 고맙습니다.




이번 명절에 내려가는데 길이 막혀서 밤 11시쯤에 저의 시골집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밤 10시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와서 아버지가 며칠 전 돼지고기를 드신 것이 잘못되었는지 계속 설사를 하신다며 어디 약국에 들러서 약을 좀 사 와줄 수 있냐 하시더라구요. 통화를 하는데 마음 한구석이 울컥하는 겁니다. 들어보니 식중독 아니면 장염인데, 그런 병은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으면 금방 낫는데 왜 병원에 가질 않고 며칠을 그렇게 그냥 끙끙 앓으셨는지, 그리고 설명절 당일 밤 10시에 이 시골에 문을 연 약국이 어딨 다고 그렇게 연락을 하시는지 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냥 짜증을 내버렸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머쓱해하시는 어머님의 목소리를 모른 척하며 조금만 기다리시라 하고 가서 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아내는 왜 어머님께 화를 내느냐, 걱정이 되면 걱정이 된다, 약국은 문 연 곳이 없다라고 조근조근 말씀을 드리면 되지 오빠는 왜 그러느냐며 저를 질책하였습니다. 아내의 말이 백번 맞지요. 좋게 좋게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부모님께서 답답하게 지내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고 미리 잘 챙겨드리지 못한 제 잘못도 있는 것 같고 해서 괜히 부모님께 다시 짜증을 부린 것이지요. 이런 것 보면 아직도 저는 한 명의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여하튼, 집에 도착해서 평생 병원에 가서 링거 한번 맞아보신 적 없는 아버지를 설득에 설득을 해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외출복을 입히다시피 하여 시골에서 가장 큰 병원(백병원)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다행히 큰 교통사고나 위급환자는 없고 다들 소소한(?) 증상으로 방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한 시간 정도 대기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기하는 동안 그동안 회사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손자는 어떻게 잘 자라고 있는지 사진도 여러 장 보여드리고 설명도 드리고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데, 이전에 이렇게 한 시간 정도 이야기만 차근히 한 적은 없는 것 같아 아버지께 죄송하기도 하고 그 대기시간이 참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순서가 되어서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말씀드리니 장염이라 진단을 내려주었고, 병원 침상에 누워 링거를 맞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본인 인생에 링거를 처음 맞아보신다며 약간 두려움을 내 비치시길래 주사 바늘 들어갈 때만 잠깐 따끔하고 이거 맞으면 금방 괜찮아진다고 설명드리고 간호사가 주삿바늘을 꽂는 동안 손을 꼭 잡아드렸습니다. 손을 잡아보니 새삼 우리 아버지가 언제 이렇게 늙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새벽에 응급실을 들러 장염 주사를 처방받고 집으로 다시 돌아와 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얼굴을 뵈니 컨디션이 확실히 좋아지신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침에 아내가 떡국을 했는데 맛있게 드시고, 속도 편안해 보였습니다. 응급실을 종종 가보신 분이라면 아실 텐데, 응급실이라도 장염 치료정도는 5~6만 원이면 되는데 두 분은 처음 가본 응급실이다 보니 병원비로 몇십만 원이 들지 않았을까 걱정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얼마 정도 나왔다 설명드리고, 앞으로도 장염이나 이런 증상이 있으면 가만히 참으면서 증상을 오래 가져가지 마시고, 미리미리 병원을 가셔라 가기만 하면 이번처럼 금방 나으실 수 있다 설명을 차근차근 드렸습니다. 비록 큰돈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들을 병원에 모시고 다녀온 것으로 자녀들의 케어를 충분히 받았다 느끼신 것 같았습니다.


이번 명절은 이렇게 응급실 덕분(?)에 가족들 간에 하나의 공통된 추억 혹은 이야깃거리가 생겼고, 덩달아 명절 내내 아버지 잘 챙긴 효자 대우(?)도 받았고, 아내도 그런 훈훈한 분위기에서 명절이 마무리된 것에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무사히 이번 명절을 보내고 왔습니다.^^


ps)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세요. 독자분들의 부모님들도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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