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직장러 Jan 27. 2023

딩크였다.

왜 그랬을까.

아내랑은 2010년에 결혼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세상물정 모르는 촌놈이 서울여자 만나서 서울에서 결혼하고서 신혼집을 차리게 됐지요. 아내는 오빠와 함께라면 반지하 단칸방이라도 좋다고 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뻔 하자 정색을 하더군요. 아,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구나라고 처음 느꼈습니다. 뭐 물론 약간의 배신감도 함께 느꼈구요. 어쨌거나 그 사람이랑 지금 알콩달콩 살고 있으니 그때 일은 가능하면 얼른 기억 저편으로 던져버려야겠습니다. (과연??)


2010년에도 서울 집값은 비쌌습니다. 지금과 비교해 보면 무척이나 저렴했지만요. 평범한 월급쟁이인 저의 경제 상황으로는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신혼집은 그 흔한(?) 아파트 전세도 아니고 다가구 전세를 구해서 살았습니다. 부모님 도움 없이 시작하다 보니 직장생활 초년생이 모은 돈이 있겠습니까.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서 구한 것이 그 정도 집을 구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죠. 아내에게 약간 미안한 감정은 있었지만, 현실이 그런 것을 어쩌겠냐며 미안한 내색은 굳이 하지 않고 덤덤한 척 그렇게 신혼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가지고 낳아서 잘 양육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혼하고서 몇 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가지지 않자 양가 부모님들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죠.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가질 수 없고, 우리는 지금으로도 행복하니 딩크*로 살겠다며 호기롭게 이야기를 드렸었습니다.

  *딩크 : 의도적으로 아이를 두지 않은 맞벌이 부부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3659&docId=3586&categoryId=43659)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 저희의 작은 보금자리가 마련되었고,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기자 아이를 가져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수년간 해오던 피임을 중단했는데! 스치기만 했는데! 아이가 생겼습니다! (짜잔!)


병원에서 노산이니 조심하라고 할 만큼 약간은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지게 되어 아내는 임신 중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입덧이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서 살이 빠지기도 하고, 아기집이 자궁에서 살짝 떨어질려고도 하고 그래서 임신 중에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아이를 10개월간 뱃속에서 키우다가 세상에 태어나게 됐는데!!!


와, 세상에 이렇게 이쁘고 귀여울 수가!!!


남들이 보기엔 어떨는지 모르겠는데, 아니 어쩌면 별로 일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너무 귀하고 사랑스러운 거 아닙니까. 아주 어릴 땐 손만 잘못 대어도 어디라도 부러질까 봐, 피부라도 상할까 봐 아기 침대에 놓고 보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저의 침대 옆에다 두고 같이 자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모두가 너무 위험하다고 했지요. 아빠가 몸부림 잘 못 치면 아기 숨 막혀 큰일 난다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아이를 보는 방향으로 한쪽으로 누워서 그렇게 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나의 사랑스러운 아기를 누르면 안 되니 항상 예민하게 감각을 세우고서 말이죠.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새벽 수유로 잠이 모자란데 잠을 자도 제대로 못 자니 항상 비몽사몽 한 상태였고, 피곤했습니다. 어느 날은 가슴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출근길에 '아, 우리 아기 결혼하는 건 보고 가야 하는데 이거 큰 병이면 어쩌나' 싶어서 출근하자마자 사내 병원을 가서 진료를 받았더니 그건 옆으로 자서 가슴 근육이 뭉쳐서 그런 거라고 하더군요.^^;


아이가 웃기만 해도 행복했고, 걷고 말하기 시작할 땐 얼마나 이뻤는지. 정말 이 아이의 평생 효도는 그때 다한 것 같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저는 아이를 안고서 집안 구석에 가서 그 눈을 보면서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해"라고 속삭였다가 그 말을 들은 아내가 자기는 그럼 뭐냐며 따지기도 했었고, 저의 아내는 그 갓난아이를 두고서 "그 누구에게도 너를 줄 수 없다"라며 혼잣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니 우리나라 대부분 부모님들의 유별난 자녀 사랑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___^


이렇게 이쁜 아이를 왜 가지지 않고 딩크로 살 생각을 했을까요? 물론 그때는 그때의 상황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데 막상 아이를 가지고 보니, 정말 모든 것이 저의 상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올해로 아들은 8살이 되었습니다. 자기 방도 있고, 혼자서 씻고 자고 일어나기도 잘하는 씩씩한 아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아들이 금방 커서 이 집을 나가게 될 것 같고, 혹은 더 이상 아빠가 필요 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낼 것만 같아 커가는 매 순간이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서 잠을 잘 때 가능하면 팔베개를 해주면서 자고 있습니다. 사실 이게 제가 팔베개를 해주는 것인지, 아들이 아빠의 마음을 알아 팔베개를 이용해 주는 것인지 정확하게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아내는 넓은 자리, 많은 베개를 두고서 왜 둘이서 그렇게 자느냐며 항상 핀잔입니다만, 저는 아들과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딩크로 살 생각을 했다니, 정말 왜그랬을까요?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무사히 명절을 보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