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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직장러 Feb 02. 2023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8살 아들입니다.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솔직히 저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나, 8살이 된 지금이나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기가 울 때, 그것이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신호인지, 졸리다는 신호 인지, 배가 고프다는 신호인지 잘 알지를 못해서 아주 어버버 거리면서 아내가 지시하는 대로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이가 말하는 것을 모두 다 종처럼(?) 해드리며 굉장히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빠, 물" 이러면 물을 떠서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컵에 빨대를 꽂아서 입에 아예 물려줄 정도였죠. "아~" 이러면 간식이든 밥이든 다 입에 넣어주었고요. 그러니 아이랑 같이 있으면서 지칠 수밖에요.


그런데 아내는 저랑은 좀 다르더라구요. 기본적으로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아이를 참 잘 다룹니다. 다룬다고 하니 표현이 조금은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아이의 의지를 무시하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물리적 혹은 심리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 몇 마디로 아내는 아이가 스스로 행동을 할 수 있게끔 이야기를 잘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아이가 엄마에게 하는 행동이나 내비치는 감정은 엄마를 엄청 사랑하고, 존중하고, 따뜻합니다. 제가 옆에서 보기엔 엄마와 아이 사이에는 뭔가 몽글몽글하고 포근한 사랑구름 같은 것이 한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아내가 아이가 학원 숙제가 있으니 좀 시켜달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또 아내의 지시니 군말 없이 당시 6살 난 아이를 책상 맞은편에 앉히고 딱 숙제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이제 겨우 6살인데 걔가 뭘 혼자 잘하겠습니까? 제대로 안 되겠지요. 게다가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짜증을 부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엄마랑 할 때는 꺄르륵거리면서 애교도 잘 부리면서 숙제를 잘도 하더니 왜 저랑 하면 짜증 부리면서 하지도 않고 말을 그렇게 안 듣는지. 저도 그러면 안 되지만 6살 난 아들에게 결국 버럭 화를 내버렸지 뭡니까.


시커멓고 커다란 아빠가 소리를 빽하고 지르니 아이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엉엉 울면서 숙제 안 한다 그러죠. 그러자 아내는 득달같이 달려와서 등짝 스매싱을 날리죠. "아니 애 상태를 봐가면서, 그리고 어르고 달래가면서 숙제를 해야지 그렇게 시키는 사람이 어딨냐" 이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아내랑은 그동안 잘했으니깐, 그냥 자리에 앉혀 놓고 "해" 이러면 하는 줄 알았거든요. 왜 아내가 아이에게 했던 방법들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지.ㅎㅎ 아이는 당연히 숙제를 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놀고 싶고, 게다가 저녁이다 보니 졸리기도 했는데 저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왜 하질 않니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죠. 


사실 더 어릴 때에도 이런 비슷한 경험들이 많습니다. 엄마 없이 아이를 볼 때마다, 아이의 식사 시간, 아이의 컨디션 이런 것들을 잘 알아채지 못해서 아이를 힘들게 만들고, 힘들어하는 4~5살 아이랑 드잡이질(?)을 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참 아빠로서 아이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엄마랑 있으면 한없이 이쁜 짓만 하는 아이인데 아빠랑 있으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이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신경과 노력을 아이에게 집중해서 쏟아야 하는 일인지 아내는 참 대단하고 고생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이전에도 아내보다 부족했고, 지금도 부족하고, 아직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부분은 바로 아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 나이인지, 그 나이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채는 관심인 것 같습니다.


4살 아이가 배고픔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얼마나 먼 거리를 걸을 수 있는지. 6살 아이는 한글을 얼마나 잘 읽을 수 있는지, 말을 얼마나 정확하게 할 수 있는지. 8살 아이는 연필을 얼마나 오래 쥐고, 글자를 얼마나 또박또박 이쁘게 쓸 수 있는지 등등 분명 통상적인 해당 나이대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고, 우리 아이가 할 수 있는 수준이 또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세세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결국 아내와는 역할을 조금 구별하기로 했습니다. 굿캅&배드캅처럼, 아내는 조금 엄하게 아빠는 엄마와는 다르게 무한히 받아주는 포근한 아빠의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정해진 역할을 당연히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냥 엄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아이를 잘 양육하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내와 함께하고 있는 아이는 옆에서 보기에도, 아내의 입으로 듣기에도 정말 멋진 아이입니다. 근데 그렇게 멋진 아이가 저에게만 오면, 장난을 그렇게 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저에게 메롱을 하기도 하고, 응석도 억지도 엄청 부립니다. 가끔 급한 마음을 가지고 저에게 이야기를 할 땐 "형! 형! 아, 형 아니고 아빠지?! 아빠!" 이러기도 합니다. 형처럼 느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빠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마라고 8살 아이의 기강(?)을 잡아야 할지 고민이 될 때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학교, 교회, 식당 등 어디서든 버릇없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손가락질받지는 않고 있는 것 같아 일단은 저에게만 그러는 것으로 알고 지금처럼 지내기로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아이를 대하는&양육하는 노하우가 많은 것 같은데, 그것을 제 것으로 만들기는 요원한 일인 것 같습니다. 8살 이아이는 10년만 지나면 18살이 되어 제품을 떠나 독립할 것이니 그전에 다 받아주자는 핑계를 대며 오늘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ps) 아내는 아이를 덩치만 작을 뿐인 한 명의 온전한 사람으로 대합니다. 아이를 '작은 사람'이라고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저에게 이야기하는 것 보면, 그것에 아이를 대하는 핵심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본 아내의 양육 노하우도 다음에 썰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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