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너만 알고 있길 바라.

by 박엄마
그날 아침 난 이런 표정으로 일어났을 거야!.png


말하고 싶지 않았던 내 과거, 이제는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나에게는 발표 공포증이 있다. 초중고는 손을 들지 않으면 발표 기회가 없으니 괜찮았다. 학부 때에는 조별 발표 과제가 대부분이라 친구들에게 떠넘기며 발표 기회를 얻지 않을 수 있었다. 대학원에서는 몇 과목에서 반드시 발표를 해야 할 때가 있었다. 몇 번이고 멘트를 고쳐 쓰면서 연습을 하고 또 하고 갔다. 그래도 내 손은 덜덜 떨렸고,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학원 시절 제일 어려웠던 일은 학회장을 하면서 행사를 진행하는 일이었다. 이전 학회장들은 목사님이거나 연구소장님이거나 선생님이거나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일이 익숙한 분들인데, 어쩌다 내가 학회장이 된 건지 그 행사 하나만 생각하면 한 학기가 지옥이었다. 나는 식순에 맞춰 멘트 하나하나 적었다. 그런 성실성 덕분에 교수님께서 날 좋게 봐주시기는 했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잘했다는 타인의 평가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내가 왜 발표공포증이 생겼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수치감과 미안함이 너무 오래 날 따라다녔기에,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이제는 누가 볼지 모르는 이곳에 고백하며, 그분들에게도 사과를 하고 싶다. 더불어 낼모레면 오십 인 나이인 나도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을 좀 잘하고 싶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때 친구 따라 피아노 학원에 갔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내가 좋았던 아빠는 아빠 직장 동료의 결혼식 피아노 연주를 내게 시켰다. 연습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연습을 했지만, 막상 피아노 앞에 앉으니 심장이 요동치고 내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피아노 학원의 발표회와 떨림이 달랐다. 진작 못한다고 했었야 하는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곳까지 따라갔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찼고 그럴수록 내 손은 말을 듣지 않았다. 한 번뿐인 그분들의 결혼식을 망쳤다는 죄책감이 너무 컸는데 그래서인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부끄러웠지만 쥐구멍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늘 미안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았다. 발표공포증이 생긴 건 그때부터다.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꼭!!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생긴다. 제일 싫은 일 가운데 하나가 낯선 곳에서 서서 자기소개를 하는 일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자기소개만 하는 것도 싫은데,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는 가끔 짧은 시간이지만 사회를 봐야 할 때가 있다. 공연장에 오신 관람객분들에게 한 마디라도 의미 있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떨림을 이길 수 있을지 고민하며 멘트를 쓰고 연습을 한다.


얼마 전 회사에서 공연을 진행하며 출연진을 소개하기 전, 잠시 인사를 나눴다. 지금 이 공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기게 되었는지, 그래서 이곳에 오신 분들께서 어떻게 이용해 주시길 바라는지와 같은 이야기, 그리고 내가 오늘 아침에 느꼈던 기분, 정말 하기 싫지만 우리가 많은 일들을 해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이곳에 오신 분들도 많은 해야 할 일들을 해내며 살아가고 계실 텐데, 그분들에게 잠시라도 힐링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 음악은 그 순간만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인데, 우리의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한지, 이런 마음들을 잘 전달하고 싶었다.


덜덜 떨면서 사회를 본걸 아시는 건지 모르시는 건지, 안면이 있던 대표님은 "아니, 말씀을 잘하시네."라고 한마디 말을 남기고 가셨다. 칭찬일 텐데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내 귀만 괜스레 벌겋게 달아올라 뜨거워졌다. 이런 나를 모르는 우리 아빠의 소원은 내가 김미경 강사처럼 대중 앞에서 강의를 하는 거란다. 아빠가 그런 말씀을 꺼내신 것도 놀랐지만 우리 아빠가 날 이렇게 모르는가 싶어 또 놀랐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 아닐까? 내가 어른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오늘도 웃기다. 과연 난 아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아빠의 꿈은 모르겠고, 어제부터 다짐했던, 새벽기상, 독서, 운동(산책), 글쓰기까지 1일 차를 해냈다. 과거를 기억하며 과거를 이제 버리며, 나도 말 잘하는 사람, 지식 있는 사람, 안 뚱뚱한 사람, 글 잘 쓰는 사람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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