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음 뒤에 가려진 슬픔
회사에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외향형인 성격 덕분인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겁다. 사람들의 세심한 변화를 기억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 없다.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고, 따뜻하게 한마디 말이라도 더 건네며 관심을 보인다.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즐겁다.
사람들 앞에서 항상 웃고 있는 나도, 간혹 우울하거나 슬픔이 찾아올 때가 있다. 사는 재미가 없고,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갑자기 막막해져서 땅으로 쑥 꺼져버리고 싶은 날도 잦다. 어린 시절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없도록 빡빡하게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일정이었는데, 지금 보니 외로움이 싫은 탓이었다. 내 어둠과 슬픔을 감히 꺼낼 수 없었다. 꼭꼭 숨기고 싶었지만, 툭툭 빠져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여럿이 모여 웃고, 떠들고, 그런 삶이 무의미한 걸 알면서도 바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혼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제발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하면서, 혼자 조용하게 커피숍에서 책 읽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아이 둘이 모두 원에 간 날, 커피 한잔 시켜놓고 책 펼치고 인증샷 한 장 찍으니 벌써 둘째 아이가 올 시간이 됐던 일이 기억난다. 혼자 있고 싶다는 건 하루 중 아주 잠시의 순간일 뿐, 나는 아이와 함께 있는 게 참 좋다. 아이들 덕분에 외로울 틈이 없어서 더 좋다.
"엄마 좀 안아줘." 한 마디면 아이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안아주고 뽀뽀해 주면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해진다.
아이들을 바라보면 미소가 지어지지만, 가끔 일을 마치고 와 밥을 먹다 보면 하루가 힘들어 웃음이 나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런 날 보면 둘째 아이가 한 마디 한다.
"엄마 안 행복해? 날 봐. 날 보고 웃어."라며 미소를 지어 보낸다. 아이를 보면 따라 웃게 되고, 머릿속 가득한 일들은 잠시 지워본다. 엄마답게 행동하자고 날 재촉한다.
며칠 전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분을 늦은 밤 우연히 만나게 됐다. 왜?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의 눈에 담긴 슬픔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지 선뜻 물을 수 없었지만, 낮에는 볼 수 없는 차가운 심장이 내 가슴까지 파고들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걸까 궁금해진다. 그는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랄지도 모른다. 슬픔은 그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삶 곳곳에는 슬픔이 그리고 애씀이, 잘해야 한다는 의무와 부담이 가득하다. 뻣뻣한 뒷목과 누적된 피곤으로 빨갛게 충혈된 눈이 말해준다. 그의 어둠에서 나의 어둠을 발견하고 반가움과 안쓰러움이 함께 전해진다. 울고 싶지만, 울 수 없는 마음, 어른으로서 해야 할 겉모습을 생각하다 보니 눈물이 쏙 들어간다.
겉으로 웃고 있지만 울고 있는 그의 마음이 전해진 건, 내 마음 또한 그와 닮았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