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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처음으로 교회를 다닌다.

집이 아니면 어디든 쉴 곳이 될 터

by 쭘볼 니나

2년전부터 아빠가 중환자실 입퇴원을 두번이나 반복하셨다.

두번째 입원하셨을 때는 위급 상황은 넘겼지만, 병환의 호전이 없어 의사는 요양원으로 옮기길 권유했다.

아빠가 강력히 거부하신 이유도 있지만(사실 그 당시엔 '강력히'라는 말을 쓸만큼 표현하실 수 있는 상태도 아니셨다.) 엄마와 오빠가, 특히 엄마는 아빠를 요양원에 두고 올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멀리 살고 있어 의견을 낼 만한 상황도, 입장도 아니었다.

시댁 상황도 좋지 않아 죄송한 마음만 한 가득인 채, 엄마가 너무 힘들지 않겠냐는 쓰잘데기 없는 걱정의 말만 늘어놓았다.


처음 중환자실에 들어가셨을 때 폐수술 이후로 폐 한쪽이 기능을 하지 못해 호흡이 원활히 안되었다.

집에 모셔 오면 병원의 호흡기를 대여하고, 밤낮없이 호흡기의 약물을 바꿔줘야 한다고 했다.

더구나 호흡기가 거추장스러운 아빠는, 밤에 주무시면서 호흡기를 떼내고, 짜증을 내시고, 한밤 중에 음식 타령도 하셨다. 엄마는 매일 24시간 내내, 2-3시간 간격으로 아빠에게 약을 먹이고, 호흡기를 자꾸 떼내는 아빠와 싸우셔야 했다. 하루에 한번은 목욕도 시켜 드려야 했으며, 아빠에게 좋은 음식을 찾고 요리하셨다.


아빠를 요양원에 모시지 않고, 집으로 모셔가겠다 했을 때 의사는 진지하게 만류했다.

병원처럼 관리가 안되면 얼마 못 가 돌아가실 수도 있고, 무엇보다 '할머니가 너무 힘드실 거에요'라고 했다.

엄마는 '정신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런 감옥에 갇혀서 어찌 사냐, 내 팔다리 아직 괜찮으니까..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2주 후, 한달 후, 1년이 지난 지금...

의사는 아빠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살리신 거'라고.

중환자실에서 두달 동안 누워있기만 해서 뼈만 앙상했던 다리에 조금씩 살이 붙은게 보였다.

혼자 걷지 못하셨던 아빠는 집안을 오가며 조금씩 걸으셨고,

밤에는 호흡기를 하셔야 하지만, 낮에는 호흡기 없이 일상생활을 하시고 계신다.


얼마 전 어버이날이 되어 일요일에 가겠다 했더니 엄마가 말씀하셨다.

'일요일 12시 전에는 나 없다'.... 교회에 나가신다고 했다.

아빠 중환자실 계실 때 옆집 아줌마를 따라 처음 가보셨다고 했다.


우리집은 거의 모든 가족이 무교라고 할 만큼 종교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교회라니...왜 갑자기 교회에 나가시냐고 물었더니, 교회에 가면 맘이 편해진다고 하신다.

목사님이 하시는 성경 말씀은 못 알아듣겠지만, 교회도 좋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다고 하신다.


일요일 오전은 여동생이 꼭 아빠를 돌보기로 엄마와 약속이 된 모양이다.

엄마가 그 3시간으로 일주일을 버틴다고 하셨다고 한다.

내가 '갑자기 믿음이 생긴거야? 하나님을 믿게 된 거야?'라고 물으니

엄마가 '누군가는 위에 계시지 않겠냐? 누구한테라도 아빠 좀 잘 부탁한다고 기도하고 싶기도 하고... 나는 교회에서 마음도 쉬고, 몸도 쉬어. 그냥 좋아. '


아빠가 편찮으신 곳이라도, 친정은 일단은 나에게 쉴 곳이었다.

나에게는 쉴 곳인 그 곳이, 엄마에게는 쉴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고모에게 한 말을 전해 들었다.

'정신 멀쩡한 양반을 가둬둘 수도 없지만....그 요양원비가 그렇게 비싸대....2-300은 든다던데, 그걸 또 애들한테 내라고 할거야?...크면서 해준 것도 없는데, 이런 거라도 덜어줘야지.'


얼마전 드라마에서 애순이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다들 내 지게 위에만 올라타려고 하는데...저것은 내 지게를 같이 짊어지려고 한다고...


나는 아직도 엄마 지게 위에 올라타고 있었던 거다.

엄마는 아직도 가족의 지게를 지고 있었다.


나는 나이 50에도 싹퉁머리 없이, 지게에서 내려올게....라고 말하지 못한다.

엄마의 쉴 곳인 교회에게.....나도 종교는 잘 모르지만.. 일단은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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