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임종
혈액암 투병을 하시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치른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믿겨지지 않을때가 있다.
아들, 아들....하시던 시아버님은 나의 결혼 생활 내내 우리 가족에게 과도한 관심과 애정을 쏟으셨다.
부담스럽고 싫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들에 대한 손주 사랑만큼은 내가 본 할아버지 중에 최고셨다.
지난해 봄부터 시작된 항암치료가 효과가 있어, 의사도 놀랄 정도로 백혈구 수치가 좋아지셨다고 해서, 당분간 위급한 상황은 없을 줄 알았다.
새벽 2시에 남편은 시어머님의 전화를 받고 혼자서 내려갔다.
나는 출근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있기에 같이 내려갈 수 없었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위급상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날 새벽 난 통화중 아버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지난해 5월 이후 갑작스레 응급실로 가신 적이 몇번 되기에 이번에도 긴급 처치만 하고 퇴원하시게 될 거라 생각했다. 배가 아프다는 말씀을 하시는데도 또렷이 들렸고 큰 고통의 내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아버님의 인내력이 대단한 듯 싶다.
통화 끝나자마자 남편은 차를 몰아 고향으로 내려갔고, 그 후 남편과 통화를 하며 상황을 전달받았다.
처음에는 응급차를 타고도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꽤 긴 시간 뺑뺑이를 돌았던 모양이다.
시아버님은 서울ㅅㅅ병원을 오가며 6개월여 동안 항암치료를 하셨기에, 고향 병원에는 진료 기록이 없다.
두 시간쯤 여기저기 오가며 응급차 안에서 실랑이 하던 끝에 대학병원에서 받아준다 하여, 중환자실에서 긴급 처치를 받고 안정되셨다는 전화를 받은 게 오전 10시쯤이었다.
면역력 최저에 혈압 최저...거기다 장천공으로 인한 긴급 수술을 시행했다고 한다.
일단은 안정적으로 호전되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12시쯤 남편이 울면서 전화를 했다.
의사가 마지막이 되실 것 같으니 가족들을 부르라고 했다고 한다.
빨리 도착해야 아버님의 임종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버스를 타고 가면 늦을 것 같았다.
아이들과 함께 카카*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갔다.
딴 사람은 몰라도 생전에 너무 너무 사랑하신 손주들의 얼굴은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도착하니 작은 시누이와 조카들이 와 있었다.
중환자실에 앞에서 호출을 하니 바로 면회를 시켜주었다.
아버님은 의식이 있으셨고, 우리 아들에게 뭔가를 말씀하셨지만 호흡기 때문에 알아듣기 힘들었다.
아들이 귀를 할아버지 얼굴 가까이 대니 뭔가 고통속에서도 긴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다.
밤 9시쯤, 의사가 이 상황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도 있고, 위급 상황이 또 언제 올지 모르니 가족 모두 있을 필요는 없고, 한 두명 정도가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새벽 두 시부터 못 자고 있는 남편과 어머님, 아이들을 시가로 들여 보냈다. 저녁 무렵 도착한 큰 시누이와 나, 둘이서 중환자실 앞을 지켰다. 그런데 한 시간도 채 안되어, 간호사가 대기실로 와서 가족들을 모두 다시 부르라고 했다.
나는 집에 막 도착한 남편과 시어머님, 그리고 작은 시누이한테 얼른 오라고 전화한 후 의사에게 아버님의 상태를 물었다.
의사는 '얼마 남지 않으신 것 같다'고 대답했다.
11시쯤 되니 의사가 큰 시누이와 나를 중환자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아버님이 아무 표정없이 누워 계셨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심장박동 그래프 같은 게 일직선이었다.
그 그래프를 보면서 의사가 설명을 했다. 심장이 멈추었다고..
담담한 시누이와 다르게 나는 호흡기에 아버님이 숨쉬는게 보였기에,
아직 숨쉬고 계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는 기계로 호흡을 이어가는 것이기에 의미가 없다고 했다.
호흡기를 떼고 사망선고를 하겠다고 하기에 내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아들이 오지 않았다고..어머님도 오시지 않았다고.
본인이 아버님 임종을 하지 못했다 생각하면 평생 남편의 한이 될 것 같았다.
11시 25분이 되어 남편이 도착하고 어머님이 오시고..
의사는 다시 한번 상황 설명을 하고 호흡기를 떼며 사망선고를 했다.
나는 현실감이 없었다.
오늘 새벽에도 전화속의 아버님 목소리를 들었다.
아버님이 다른 세상으로 떠나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미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계시다는 것,
나와 다른 세상에 계시다는 것, 다시는 아버님과 얘기할 수 없다는 것,
그 죽음이란 것이 아버님에게 왔다는 것이 도대체 현실인 것 같지가 않았다.
새벽에 아버님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오늘 아침이었다.
불과 24시간도 안된 일인데, 다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하루도 안되는 시간 동안, 80년의 인생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 같았다.
아버님도 나처럼 생각하셨을 것 같았다.
얼마 전 그랬듯, 사나흘 치료 받고 퇴원할 수 있겠지....
이렇게 죽음이란 것이 쉽고 허망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