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업무는 선관위에서 다 하는 줄 알았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 중의 하나다.
선거업무는 선관위에서 다 하는 줄 알았다.
지자체에서 이리 대부분의 선거업무를 도맡아 하는 줄은 몰랐다.
공보물도 선관위에서 발송하는 줄 알았다.
미리 예상할 수 있는 선거 업무인 경우에는
구청 자치행정과의 지휘(?)로 거의 3~4개월 전부터 동 주민센터는 선거체제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번 선거처럼 한 달 전 긴급하게 선거업무가 개시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동 주민센터는 초비상 근무태세에 돌입하게 된다.
직접적인 선거 업무는 대부분 동 주민센터에서 이루어진다.
지금 나는 구청에 근무하고 있어 그 영향을 덜 받지만
아마 동 주민센터에 근무하고 있었다면 수시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이나 새벽 출근도 허다했을 것이다.
각 동 주민센터마다 선거업무를 지휘할 간사와 서기를 임명하고, 동 선관위를 구성한다.
투표소 섭외부터 시작해서, 선거 당일 사용될 선거인 명부 제작을 위해 사전 전산작업이 며칠 간격으로 실시된다. 또 공보물 발송 작업을 할 때는 주민센터와 우체국이 새벽부터 당일 발송을 위해 말 그대로 촌음을 아끼며 발송 작업을 한다. 대부분은 주민센터 직원들이 고생하지만, 사전투표를 포함한 투표 당일에는 구청 직원들이 투표 사무원으로 차출된다.
공무원 초임 시절, 나는 선거사무원이나 시험감독관으로 한 번쯤 일해 보고 싶었었다.
공무원 임용시험을 볼 때 교실 내를 오가던 시험 감독관 두 명이 어찌나 부럽던지, 나도 언젠가 공무원이 되면 감독관 일을 꼭 해봐야지 생각했었다. 선거사무원도 마찬가지다.
투표소 당일에 사무원의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두 직무 모두 한 번씩 해 보고 나니, 정말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공무원들에게 기피하고 싶은 부담스러운 업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가지 모두 아무 일 없이 지나가면, 평화롭게 지나간다는 보장만 있다면
먼저 자원해서 해도 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공무원이 되고 나니, 그 일말의 '민원의 소지',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는 일이 발생할까 두려워진다.
더구나 팀장이 되고 나니 이제 투표사무원이 아닌, 투표관리관이 되어서
한 투표소의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예전에는 공무원 만이 투표사무원으로 일했는데
최근에는 투표사무원이 부족해 투표사무원 중 1/3을 일반 주민들 중에서 선발(?)한다.
동 주민센터 직원 얘기를 들어보니 일반 주민들에게는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고, 선거수당도 있어서 꽤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혹시 이 글을 선관위 직원이 본다면 제안하고 싶다. 일반사무원의 선발 기준을 명확히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이도, 학력도, 성별도 없이, 선발 자체를 동에 일임을 하니, 70대 어르신들이 왜 나를 안 뽑았냐며 항의를 거세게 하신다. 선거는 아침 6시부터 최소 저녁 6시까지 (이번 선거는 8시까지) 12시간 이상을 쉬는 시간 없이 임해야 한다. 더구나 선거인 명부는 지금 내 노안(?)의 정도로도 글씨 보기가 쉽지 않다. 명부 확인이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가! 동 직원의 탄원을 이곳에 적어본다.
투표관리관으로서 한 투표소의 책임자가 되는 일은 마음이 무겁고 힘들다.
하루 종일 정치색이 다른 참관인들의 시선과, 이견을 중재해야 하고
선거의 불만을 투표소에 쏟아내는 주민들과 다툴 때도 있다.
또한 선거사무원의 업무 배치로 인해 사무원들과 얼굴을 붉힐 때도 많다.
위에 얘기한 것처럼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사무원으로 배치가 되면, 명부 확인석에는 배치할 수 없어 입구 안내업무를 맡긴다. 그만큼 명부 확인석이나 투표교부석의 사무원들이 업무가 가중되어 힘들어진다.
12시간 동안 별도의 점심시간이 없어, 교대로 잠깐씩 점심을 먹고 온다.
그러나 그날은 시간이고 뭐고, 그냥 밥맛이 없다.
투표용지 한 장이 겹쳐져 두장이 교부될까 신경이 곤두서고
간혹 '박땡땡 후보는 몇 번째 칸이야?" 묻는 할머니들에게 어떠한 대답도 해줄 수 없음에도,
그런 것도 대답도 안되면서 여기 왜 앉아 있느냐는 호통도 들어야 한다.
새롭게 리모델링한 경로당 투표소에서 투표관리관을 하게 되었을 때는
밑바닥에 비닐 장판을 깔고 해야 했기에, 훼손방지용 장판을 깔고 끝에 특정색의 테이프를 쭉 붙였더니
그 테이프 색이 어느 정당의 특정색 계열에 가깝다는 민원이 제기되어 다시 떼고 붙여야 했다.
투표칸을 잘못 찍었다며 다시 투표용지를 달라는 일은 거의 매 투표 때마다 발생한다.
( 날인된 투표용지를 펼치고 기표소에 나오면 '공개된 투표지'로 분류하고 투표함에 넣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 (지금은 5월 28일 밤이다)
우리 부서의 5명 정도는 내일 사전투표사무원으로 일하게 된다.
나는 지난해 선거에 투표관리관으로 차출되어 일했기에, 이번은 제외되었다.
투표 당일에 가족들과 함께 투표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일과 모레, 또는 6월 3일에 투표에 참여하실 모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투표사무원들이 오랜 기간 이 투표를 위해, 신중하게 많은 업무를 진행해 왔으며
여러분들의 한 표 한 표를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이번 투표 종사원은 아니지만
사전 투표, 본투표 이번 대선 업무 모두, 무탈하고 평화롭게 마무리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