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월이 흐르고, 부모님 세월도 흐른다.
내 의지로도 어쩔 수 없이, 세월이 흘러서, 너무 늦어서 못 하게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엄마, 아빠를 모시고 여행을 가는 일이다.
결혼 전에는 경제적 여유가 너무 없어서, 하루하루 돈 벌기도 빠듯해서 여행 갈 생각 따윈 하지 못했다.
이제 4남매가 결혼하고 각자의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리면서 조금은 경제적인 안정도 찾은 듯하다.
이렇게 4남매가 조금씩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살게 되었고, 또 엄마 아빠는 그 돈을 조금씩 모아서 제법 큰돈을 만들어 손주들 용돈을 주기도 하신다.
결혼 후 나는 시댁을 챙기기 여념이 없었다.
남편은 외아들이었고, 부모 자식 사이가 정말 각별한 가정이었고, 심지어 남편은 사촌형제들과 조카들과도 종종 연락하며 지냈다. 그만큼 새로 들어온 며느리인 나에게 팔촌 시댁들까지 관심이 많았다.
남편의 큰아버님은 나를 데리고 시댁의 시댁인 종갓집의 온 동네를 돌며 인사를 시키기도 하셨다.
암튼 시댁의 대소사를 챙길 것이 너무 많았고, 이 시댁은 모든 것을 며느리가 함께 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계시던 나의 친정 부모님은 내가 시댁과 함께 하는 것이 며느리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셔서, 오히려 시댁에 소홀할까 걱정하시는 분들이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결혼 10년을 넘어서까지 모든 여름휴가를 시댁과 보냈다. 시부모님과 2박 3일 여행을 가거나, 시댁의 형제 가족들이 모두 모여 가기도 했다.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휴가는 당연히 시댁에서 보냈고, 설이나 추석 명절에도 늘 시댁이 먼저였다.
그렇게 10년을 보내니 친정 부모님은 여기저기 편찮으신 곳이 생기고, 작은 수술을 여러 번 하기도 하셨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엄마 아빠와의 추억이 너무 없었다.
여행을 모시고 간 적도 없고, 함께 찍은 사진도 거의 없었다.
엄마 아빠 생신에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 외에는 바람을 쐬러 나간 일도 없었다.
엄마 아빠에게 바닷바람이라도 쐬러 가자고 하였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무릎이 아파서 걷기도 힘들고, 차 안에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다"고..
아빠도 말씀하셨다. "이제 좀 걸으면 숨도 차고, 화장실도 자주 가게 되어 불편하디"고..
나도 모르게 내 나이가 50이 되어 가는 만큼, 엄마 아빠의 나이도 70을 넘어가고 80을 넘어갔다.
이제 엄마 아빠는 자가용을 타고 가는 여행도 힘들어하시는 연세가 되셨다.
너무 미안했다. 엄마, 아빠가 괜찮다 하시니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나의 부모님이 걷고 움직이시는 것도 힘들어하실, 그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지난번 부모님을 뵈러 가니, 아빠가 우리 아이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내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하셨다.
근처에 사는 오빠나 동생들에 비해 나는 두세 달에 한번 얼굴을 뵙게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여든이 넘으신 아빠의 얼굴은 뵐 때마다 달라져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들을 엄마 아빠의 얼굴을 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추억을 갖고 싶다.
얼마 전 부모님을 모시고 친정 동네 멋진 야경 코스로 드라이브를 했다.
아빠를 양 옆에서 부축해야 했지만, 오랜만에 시원한 바깥바람을 쐬니 '좋다'고 하셨다.
나이 50이 되어 이제서야 부모님을 돌아보게 되다니..
좋은 구경도, 맛난 음식도 이렇게 많은 세상에..
나는 이리도 후회가 되는데, 정작 부모님은 다 살다보면 그리 되는 거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니..
부모라는 역할을 20년은 해봐야, 내 부모를 생각하게 되는 철없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