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8일
2023년 1월 1일 자 대규모 인사발령이 있는 날이다.
하지만 나에겐 다른 의미로 긴장되는 날이었다.
20년 만에 도전한 '국내여행안내사' 2차 합격자 발표일.
여기저기 인사발령 통보를 받은 사람들로 인해 사무실은 내내 어수선하였다.
그런 와중에 나는 계속 시계를 보며 한국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 큐넷을 들락날락하며 발표를 기다렸다.
몇 년 전 6급 승진을 하고, 둘째가 학원 끝내고 집에 오면 이미 밤 10시가 넘어, 늦게 집에 들어가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2021년 여름이 다가올 무렵, 나는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 옛날 신혼 초 시골마을에서 어제와 같은 오늘, 내일을 보내는 것이 싫어서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던 것처럼 말이다.
처음엔 공인중개사를 생각했다.
외우는 공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책을 사고 강의 몇 개를 들어보니 이것은 외우는 공부뿐만이 아니라, 더불어 시세를 판단하고, 계산하고 이해하는 과목들이었다. 난 숫자가 너무 싫다. 계산하는 것도 너무 싫다.
몇 회차 강의를 들은 후 깔끔하게 포기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공부가 아니었다.
몇 년 전에 한국사능력시험을 준비할 때와는 느낌이 너무 달랐다.
(10년 전쯤 나는 한국사 1급에 합격했었다.)
내가 이 나이에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를 뭐 하러 하나 싶었다.
신나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격증이 전공을 필요로 하거나, 기술이 필요하거나, 연습을 필요로 했다.
산업인력공단을 한참 들락거리며 도전할 만한 자격증을 찾아보았다.
난 역사 마니아다. 역사 공부가 필요한 자격증을 찾아보니 '국내여행안내사'라는 자격증이 보였다.
난 유적지를 좋아한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건물이, 이 탑이, 이 책이, 이 조각품이 몇 백 년 전에 누군가가 만들었고, 그 수많은 시대를 살아왔구나 생각하면 감개무량해진다. 오백 년 전의 조상님 손길이 어딘가에 있었을 장소와 작품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웅장해지는 느낌이 든다.
유적지를 다니다 보면 단체를 이끌고 문화해설을 설명하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은 들을수록 재미나곤 했는데, 그 역할을 '국내여행안내사'라는 자격증으로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문화해설사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국사 과목도 포함되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유적지에 대해 공부할 수도 있고, 또 퇴직 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 필요할지 모를 자격증이라 생각했다.
2021년 5월쯤 잠실에 가서 책을 샀다.
그리고 조금씩 퇴근 후에 공부를 시작했다.
관광법, 관광자원, 관광학, 국사 총 4과목이다. 제일 어렵다는 관광법부터 시작했다.
너무 헷갈리고 세세한 부분까지 외우려니 너무 힘들었다.
호텔의 종류며, 허가 기준이며 잘 외워지지 않았고, 볼 때마다 새로웠다.
첫 두 단원을 3-4개월 제자리 공부만 한 듯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7월에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새로운 부서로 가니 갑자기 많이 바빠지고, '국내여행안내사' 자격증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9월이 되었을 때 깨달았다.
1년에 한 번뿐인 시험에 접수조차 못했다는 것을..
남편이 비웃었다. 나도 내가 어이없었다.
준비물 놓치는 아이들을 나무랄 자격이 없다.
그렇게 또 1년을 보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