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경험해보는 시집살이-장단점이 보인다.
올해 초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시어머님은 혼자 생활하셨다.
우리 부부는 한달에 한번 정도 시댁에 내려갔고,
가까이 사는 두 시누가 사흘에 한번 정도 서로 번갈아 어머님댁에 가서
반찬이며 청소 등등 이것저것 챙겨드려왔다.
그런데 지난 주 갑자기
어머님 허리 협착증이 재발하셔서 아들 딸들이 상의한 끝에
올 봄에 시술받은 서울 병원에서 다시 진료 받게 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때는 2시간 시술 받은 후 바로 집으로 내려가셨다.)
지난 주 모셔올 때는 언제까지 계시게 될지 기약이 없었다.
시술로도 안되어 석달만에 아프시니
차라리 수술을 받는 게 어떨까 남편이 의견을 내었다.
나 역시 수술을 받으신 후 내가 휴가라도 내서 간병을 해야 하지 않을까
각오하고 있었는데
정작 병원 진료는
허리에 통증 주사와 석달치 약 처방으로 끝났다.
정작 근본적인 치료없이 이렇게 진통제만 드셔도 되는 걸까...생각했지만
어머님은 통증이 완화되니 제법 얼굴에 생기가 나셔서
모셔온 지 하루만에 말수도 많이 늘어나셨다.
며칠을 우리집에서 지내시며 통증이 혹시 다시 생길까
지켜보자고 해서 일주일 동안 지내기로 하셨다.
아프신 동안은 침대와 쇼파에서 꼼짝을 안하시더니
퇴근 후 집에 가보니
하루종일 집에 같이 있었던 딸램의 전달사항이 한 둘이 아니었다.
"엄마, 할머니께서 아마도 우리집의 시스템을 다 바꾸시려는 것 같아요."
농담처럼 미소띤 얼굴로 얘기하긴 했지만
듣는 나는 드디어 올게 왔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깔끔하고 야무진 살림꾼이 아니다.
그에 비해 어머님은...
음...방학때 잠깐 지내러 온 손주들 속옷도 다려 입히시는 분이다.
전기압력밥솥의 뚜껑 안 쪽에 붙은...고무패킹 달린 둥근 철판도 매일 닦으시는 분이다.
하루에 세 끼 먹으면 밥도 세 번 해야 된다는 분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신발장 신발이 몇켤레가 신발장으로 들어간 듯하고
나머지 신발들은 나란하다.
밥솥을 열어보니 고무 패킹이 반짝인다.
씽크대 안에 배수구도 깨끗하다.
나만의 장소에 두었던 칼도 씽크대 문 안쪽으로 끼워져 있다.
주방 하부장에 대충 놓았던 냄비와 후라이팬, 그릇들이 정리 되어 있었다.
당신이 열어보시고, 딸 아이가 할머니의 지시(?)에 의해
이것저것 하루종일 바빴다고 한다.
딸의 말을 들어보니 손주들의 옷장도 다 열어보시고
헤진 것 같은 옷들은 몰래 버리려고 어디에 숨겨 두셨단다.
(내 보기에도 많이 헤져서 아이들에게 버리라고 했지만
누렇게 변했어도 편한 옷이라 집에서 잠옷으로 입는다며 버리기 아까워한 것들이다.)
어머님이 지금 나의 살림 어디를 체크하고 계실까
나도 직장에 나가서도 신경쓰이지만
직장 나가는 며느리에게
하고 싶은 잔소리 맘껏 못하시는 어머님도 스트레스이실 듯 하다.
추측컨대 어머님께서 이렇게 점점 몸이 안 좋아지시니
머지 않은 미래에 어머님과 합가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머님은 몇년전부터 나중에 아들네랑 살아야지 하는 말들을 농담처럼 하셨다.)
차라리 저는 이러이러한게 부족한 사람이니
어머님의 전문 분야는 '어머님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라고 선언을 하는게
서로의 마음 다스림에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어제 사무실에서 동료 언니가
주말동안 시골 시댁에 가서 따온 거라며
옥수수 한 망을 주었다.
아침에 주방에 놓인 옥수수를 보시더니 왠 옥수수냐 물으셨다.
직장 언니가 주었는데 저는 옥수수 삶는 거 잘 못 하니
어머님이 삶아 주세요, 라고 말씀드렸다.
갑자기 바빠지신 어머님은 아침 6시에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수염을 정리하시며
달짝지근한 뉴슈가를 찾으신다.
남편은 어머님께
허리도 아프면서 뭐가 급하냐고 타박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님은 '옥수수 삶는 할 일'로 인해 신나는 마음이신 것을.
'맛있게 삶아 놓을테니, 퇴근해서 먹어라'
가장 활기찬 어머님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