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살. 4학년3반. '더블드래곤' 나의 젊은 날을 함께한 이름
https://suno.com/s/7a0HSOjBsB1xxfJk
작사:GOLDRAGON 곡:SUNO
['더블드래곤']
내 유년 시절 전자오락실에서 유행하던 게임 이름이었다.
그리고 '금용'과 '진용', 우리 둘이 함께 붙어 다니면 친구들은 장난스럽게 용이 두 마리라며 그렇게 불렀다.
늘 함께였다. 기쁠 때도, 신날 때도, 때론 귀찮고 지겨울 때마저도. 하지만 같이 있을 땐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누구나 학창 시절, 한 번쯤은 사내 녀석들끼리 길을 걷다 타학교 학생을 마주쳤을 때 혹은 시비가 붙어 서로 눈을 마주했을 때 눈을 바닥에 떨구는 게 자존심 상해서 싫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진용이와 함께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시절엔 그랬다.
내 친구, 진용이 이야기다.
"도대체 니들은 왜 그 모양이냐!" "둘이 공부는 안 하고 맨날 붙어 다니니까 그렇지 뭐."
엄마들은 우리만 보면 늘 그런 말로 혀를 찼다.
진용이를 처음 만난 건, 우리가 갓 중학교에 입학한 시점인 엄마들끼리의 만남에서였다.
내 작은 누나와 진용이 형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진용이 형은 또래 중에 늘 1등을 놓치지 않던 영재였다.
"진태야, 너 애들 공부 좀 시켜봐라."
엄마들은 우리를 형한테 맡겨 공부를 시키시려 했지만, 가족끼리는 운전도 공부도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이 있듯, 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학창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될 때까지 엄마들 덕분에 이어졌다.
그리고 우린 부모님 속을 참 많이도 썩였다. 공부는 안 하고, 하지 말란 것만 골라가며 했다. 그게 왜 그렇게 재미있던지.
어른들은 늘 재미있는 걸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우리는 그저 친구 하나면 세상이 전부였고, 같이만 있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원할 것만 같던 우정에도, 유통기한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학창 시절을 지나고도 우린 자주 만났다. 하지만 각자의 사회에서 역할과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에 만나게 되는 시간은 점차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삐삐' 하나로 연락을 주고받고, 한 달에 한 번만큼은 꼭 얼굴을 보자고 약속했다.
시간이 흘러,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변의 친구들은 하나둘 결혼을 했고, 나 역시 교재하고 있던 여자친구와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서둘러 결혼을 하게 됐다.
그렇게 다들 각자의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지만 진용이만은 그러지 못했다.
연애는 누구보다 많이 했지만, 늘 인연은 어긋났고, 좋지 않은 집안 사정 탓에 결혼이란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그 무렵 진용이는 경기도에 있는 한 사설 수영장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주말을 틈타 자주 연락을 하고 찾아가 만나보려 했지만 그는 늘 시간이 없다 했다. 유부남이 된 나보다 젊은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과 또 다른 친구들과의 만남을 더 자주 가졌다. 괜히 서운했다. "쳇, 나도 소중한 주말에 가족을 뒤로하고 일부러 시간 내서 보러 가려는 건데..." 서운함은 서운함대로, 화도 나고 결국 가정에 신경을 더 쓰게 되면서 나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연락을 끊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멀어졌다. 그 후로 삶에 치여 하루하루 바쁘게 살고 있던 어느 날,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가 말했다. "야, 진용이 병원이라더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수영 강사라는 직업이 당연히 몸을 많이 쓰는 일이다 보니, 어디 다쳤겠거니 했다.
하지만 며칠 후 다시 들은 소식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진용이... 암 이래. 위암인데, 담도까지 퍼졌대... 이미 늦었대."
그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휠체어에 앉아 있던 진용이의 모습을 보고 난 망연자실 했다.
앙상한 얼굴, 퉁퉁 부은 다리, 여러 가지 수액에 의존한 채 힘겹게 미소 짓는 진용이.
"인마, 이제야 오냐... 잘 왔다..." 기운 없는 목소리. 그마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왈칵, 눈물이 터질 뻔했지만 억지로 꾹 참았다.
먹고 싶다며 사갔던 아이스크림 하나를 두 입도 채 먹지 못하고 토해내 버렸다.
"이 새끼야 이지경이 되기까지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야, 인마.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빨리 일어나서 농구하러 가야지. 어?”
진용이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우리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며칠 후, 진용이는 세상을 떠났다. 등이 앙상하게 뼈만남아 눕지도 못한 채 침대에 엎드린 채로 떠났다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들은 이야기.
본가의 가족을 부양하고 책임지느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수영 강습을 하고, 매일 밤 소주 한 병으로 외로움과 고단함을 달래던 진용이. 그렇게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거였다.
진용이는 그렇게 짧은 42년의 생을 마감했다.
서글프지만 인간의 망각기능이란 그런 것이다. 우린 그렇게, 가슴 한켠에 친구 하나를 묻은 채 아무렇지 않은 듯 매일매일을 살았다. 매년 돌아오는 기일에 추모를 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사람을 오해하고, 서운함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밀어낸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전해지지 않는 마음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깨닫는다.
이제 와서야 이해하게 된 네 마음들, 오늘따라 무척 미안하다, 친구야.
그래도 나는 안다. 네가 있었기에 내 젊은 날이 그렇게 소중한 기억이란 걸.
진용이는 그렇게 조용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날 이후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 어딘가를 자꾸 쓰다듬으며 살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 '멍' 같은 것. 그 자리에 진용이가 있었다. 우리는 함께 웃었고, 같이 철없이 놀았고, 뜨겁게 살았다.
같이 있으면 뭐든 두렵지 않았고, 마치 세상 어디에라도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친구.
하지만, 우린 너무 당연히 여겼다. 늘 곁에 있을 거라 믿었기에.
그렇게 서운함 하나로 등을 돌렸고, 그 짧았던 인연의 불씨를, 우리 손으로 꺼뜨렸다.
지금에야 알겠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전해지지 않는 마음들이 있다. 오해란 이름으로 덮어둔 진심은 세월이 흘러도 풀리지 않는다.
그래도 진용아. 나는 여전히 너를 기억한다. 내 젊은 날의 모든 빛나던 순간에 언제나 너는 거기 있었다.
살면서 가끔, 혼자 걸어야 할 길목에 다다를 때면 나는 다시 그때, 우리 둘이 뛰어놀던 골목을 떠올린다.
세상을 향해 마치 두 마리의 용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던 그 시절. 그게 나에겐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너는 알까.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땐 우리가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 더 자주 웃고, 조금 더 오래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잘 가, 친구야. 빛나던 날들을 함께해 줘서 고마웠다.
"너를 영원히... 기억할게."
FROM. GOLDRA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