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49살. 4학년9반 졸업반. 올빼미형 인간이 힘든 새벽을 마주하는 자세

by GOLDRAGON

https://suno.com/s/Un0HDg6qbcQkpSoo

작사:GOLDRAGON 곡:SUNO


새벽 5시 20분 기상.
나는 태생이 밤을 사랑하는 올빼미형 인간이다.
깊은 새벽까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잠드는 나에게, 이른 아침의 출근은 여전히 낯설고도 고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같은 시각에 눈을 뜬다.
가장 먼저 마을의 '주민행정복지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헬스장으로 통하는 컴컴한 복도에 불을 켜고, 헬스센터 안에 조용히 라디오를 튼다.
이름 모를 아나운서의 차분한 목소리와 잔잔한 음악이 조용히 공간을 채운다.

그 정적과 고요함 속에서 오픈준비를 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는 순간.
그제야 비로소 나는 오늘 하루를 받아들인다.

나는 정규직 공무원도 민간인도 아닌 '그 어딘가'에 위치한 사람이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기간제 위촉직 공무원'
누군가는 '건달과 일반인의 중간'을 '반달'이라 표현하던데, 나도 사회 안 어딘가에 걸쳐진 그런 반달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슬하게 소속되어 승진 없는 '주사'의 직급을 부여받고,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

그렇게 나는, 가장 먼저 하루를 연다.

이른새벽 로비와 G.X룸의 전경



시간이 지나면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서서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이름도, 직업도, 속내도 모르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순서와 운동 루틴만큼은 잘 안다.
그 반복은 내게 하나의 신호가 된다.
이 마을의 또 다른 누군가들도, 나처럼 고단하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새벽을 열고 또 산다.

어느 날, 그런 익숙한 새벽의 풍경이 조금 흔들렸다.
평소 젠틀하고 온화해 보이던 두 명의 중년 신사가 같은 운동기구 앞에서 마주친 것이다.
5분 간격으로 들어오던 그들이, 하필 동시에 같은 기구를 향한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이 시간에 꼭 이걸 먼저 해야 합니다. 그쪽이 양보하시죠."
"거, 매일 보면서 내가 먼저 쓰는 거 모르세요? 내가 손잡이 먼저 잡았잖소."

익숙하던 목소리에서 짜증 섞인 고성이 튀어나왔고,
온화해 보이던 얼굴 뒤에 숨어 있던 '진짜 감정'이 순간 드러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들 사이를 조율했고, 하루는 다시 평온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그 장면은 내게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생각했다.
우리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평소의 태도로 믿는다.
하지만 누구나 예상치 못한 순간, 스스로 감춰둔 '또 다른 얼굴'을 꺼내 보일 때가 있다.

누가 더 올바른 사람인지, 누가 더 젠틀한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들도, 나처럼 그저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보고 기억하는 건 늘 전체 중의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일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새벽을 여는 부지런한 젊은이일까.
혹은 단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시간에 선 사람일까.


사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가장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대부분,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때로는
단 10분 일찍 하루를 시작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 고단한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아주 가끔,
그렇게 조금 일찍 열린 하루 속에
예고 없이 다가오는 반전 같은 선물
우리의 일상을 조용히 흔들어놓는다.

지나가다 문득 듣게 된 말 한마디,
낯선 이의 미소,
혹은 나조차 몰랐던 내 감정 하나까지.


내일도 나는, 변함없이 새벽 5시 20분에 하루를 열 것이다.
의무적이고 기계적인 반복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길 바라며, 그 무언가를
오늘도 기다리며.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