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해 버린,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하며 방송작가를 꿈꿨었다.
대학교 입시 때 어떤과를 갈까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나에게 1순위는 국문과였다.
처음 글을 쓰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 여름방학 때였다.
글을 읽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어 방학 내내 집에 있는 책을 전부 다 읽게 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밤에 몰래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잠까지 거르며 쉬지 않고 읽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때 담임선생님의 교육방침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
아침 조회시간에 500자 원고지 한 장씩 주며 1교시 시작 전까지 모두에게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게 하셨다.
오늘은 아침밥, 어제는 장미꽃, 내일은 우산 이런 식으로 매일 바뀌었다.
1년 내내 하다 보니, 반 아이들 전부 500자 원고지를 채우는데 10분 정도 남짓 했다.
누가 먼저 빨리 쓰나 내기를 할 정도로 숙달되었다.
그리고 6학년때도 같은 담임선생님이 되면서 나는 글쓰기 연습을 2년 내내 하게 된 것이다.
중학교 때 들어가서는 반 친구들 이름을 넣은 소설을 연재했다.
그때는 반에서 가장 활발한 아이가 다음 카페에 각 반의 카페를 만들었고, 거기서 소통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 피시방을 누구나 가던 시절이었다.
반 친구들의 이름을 넣어 쓴 소설은 그야말로 초 대박이 났었다. 우리 반뿐만 아니라 다른 반 아이들까지도 모두 내 소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문학에는 문외한이었던 친구가 갑자기 시를 쓴다고 했다.
공모전에도 도전한다고 했다.
머리에서 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내 작가가 꿈이라고 했지만, 도전하지 못했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평가를 하면 곧이곧대로 상처를 받았다.
꽤 글 쓰는데 소질이 있었는데도 자만했다.
시창작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매주 시를 지어 오면 시인에 등단시켜 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때는 어리석게도 시인이 되면 굶어 죽진 않을까 괜한 걱정을 했다.
그걸 직업으로만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이런 바보가 어디 있나 싶다
졸업을 하고 방송작가에 도전할 때도, 시작 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겁먹고 도망쳤다. KBS방송작가 아카데미에 다녔었는데 그때 강의를 하셨던 작가님들이 너무 무서웠었다. 그들의 카리스마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방송국에 취직하면 저런 무시무시한 작가님들 밑에서 일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오금이 저렸었다. 꼭 그 이유만은 아니긴 했지만, -월급이 적다는 거던지, 생활패턴이 일정하지 않다던지 등등 -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로 해버렸다.
그리고 오늘 불현듯 궁금해 대학시절 리포트를 꺼내 보았다.
내가 스스로 쓴 건가 싶을 정도로 놀랍도록 잘 쓴 리포트들이 많았다.
소설이며, 시며, 시나리오며 심지어 논문까지도
이렇게 글을 잘 썼는데 그땐 내가 잘하는 지도 잘 몰랐다.
먹고살기가 바빠서 작가라는 꿈은 접어두고, 또는 '작가는 천재들의 영역이다'라고만 치부해 버리면서
나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일을 직업으로 삼았었다.
어리석은 후회는 이제 접어두기로 했다.
그저 이렇게 글을 씀으로써, 다시금 꿈을 품어보기로 했다.
훗날 또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저 시작해 본다.
어차피 지금의 나는 지금 뿐이므로, 20대의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있었듯이
앞으로 40대의 내가 쓸 수 있는 글도 지금 이 순간뿐이다.
포기했었지만,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영원한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