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따로 또 같이 각자의 페이스 대로.
5년 전 엄마랑 같이 제주도에 일주일정도 머무른 적이 있었다. 나도 엄마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라산을 가보자는 이유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 한라산. 엄마는 더 늙으면 살면서 한라산은커녕 여행도 못 갈 거라고 했다. 나도 평소에 살면서 한라산 한 번은 가봐야지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제주도로 떠났다. 현지에 살고 있는 제주도민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까지 한라산을 처음 가보는 여자 셋이 새벽같이 일어나 등산을 시작했다.
나는 이제껏 등산이라는 것을 해봐야 고작 뒷동산 가본 게 다였고, 등산으로 가본 산중에 가장 높은 산은 북한산이 다였다. 심지어 나는 등산 스틱이나, 등산화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무모할 수가 없다. 나는 니트 소재의 천으로 만들어져 있는 러닝화를 신고 등산길에 올랐다. 발목을 잡아주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소재가 흐물흐물한 니트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식한 사람이 용감했다. 나는 그 신발을 신고 낮은 여러 산을 이미 등산했던 후라 등산화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서로의 등산 페이스가 맞지 않는 걸 깨달았다. 체력의 차이였다. 우리 셋의 등산 속도는 서로의 페이스에 지장을 줄 정도로 달랐다. 엄마가 가장 느렸고, 내가 중간, 친구가 첫 번째로 등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로 기다려 주기도 하고, 보폭을 맞추는가 했지만 이내 서서히 멀어졌다. 그 틈은 점차 벌어져 서로 얼마큼 떨어져 있는지 모를 만큼 멀어져 있었다. 서로의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특히나 엄마는 등산을 초반에 엄청 힘들어했는데, 나는 언제든지 힘들면 같이 되돌아 내려가자고 말했다. 괜히 무리해서 도전을 하다가 허리가 안 좋은 엄마의 건강을 해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천천히 쉬엄쉬엄 갈 테니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엄마도 힘들지만 완등에 대한 목표는 강렬했다. 나도 마침 엄마 속도에 맞춰 천천히 올랐더니, 힘이 두 배나 더 드는 것 같았다. 엄마도 나에게 부담될까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이내 무리였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따로 올라가기로 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우리 엄마는 엄청 똑 부러지고, 용감하고, 똘똘(?) 하기 때문에 엄마를 믿고 끝내 그러기로 했다. 나는 엄마한테 오는 전화를 혹여 못 받을까 핸드폰 벨소리를 최대로 키우고 만약 힘들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하고, 꼭 안전의 안전을 기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무거운 마음이지만 먼저 올라갔다. 우린 그렇게 서로의 등산 속도가 맞지 않아서 같은 길이지만 따로 가길 택했다.
중간중간 쉬는 구간들이 있었고 서로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 거리가 벌어지지 않게 앞서간 사람이 뒤처진 사람을 기다리면서 갔다. 물도 마시고 싸 온 수분 가득한 과일도 먹으면서 중간중간 풍경 구경도 했다. 그렇게 셋이 모이면 자잘하게 생긴 일들에 대해 수다도 떨고, 한라산이 얼마나 멋있는지, 평소 보지 못한 식물들이며 , 야생동물 이야기도 하면서 힘을 얻었다. 그렇게 함께 오르기도 하고 따로 오르기도 하면서, 종종 믿을 수 없는 경치들이 쏟아지면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사진도 찍었다. 한라산은 고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계속해서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고, 정말 세상에서 두 번 다시 못 볼 절경들이었다. 요정이 아니 산신령이 산다면 꼭 이런 곳에서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의 웅장함에 우리는 그대로 압도되었다.
하지만 한라산을 오르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쯤이면 정상이려나 싶었지만 도무지 정상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 예상했던 정상 도착 시간보다 훨씬 뒤인, 한두 시간 정도 더 산을 오르고 난 후에나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백록담을 본 순간 한라산을 정말 잘 왔다고 생각했다. 내 두 발로 걸어 올라오지 않았으면 평생 볼 수 없었을 절경이었다. 그날은 그 해 첫눈이 한라산에 내린 날이라 더욱더 절경이었다. 백록담이 반쯤은 눈에 덮여 있었다. 그 풍경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정상의 경이로운 풍경을 느끼던 것도 잠시 현실은 상상과는 조금 달랐다. 정상에 눈이 온탓에 많이 춥긴 추웠다. 바람도 날아갈 듯 세차게 불었다. 내 두 뺨이 찢기는 것 같았다. 등산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생각보다 옷을 얇게 입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꼭 필요한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문제가 있었다. 백록담이라고 쓰여있는 돌비석 앞에는 엄청난 등산객들이 사진을 찍으려 줄을 길게 서 있었고, 1시간 정도 줄을 선 후에나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꿈과 현실은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그 순간들 까지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내가 내 두 발로 한라산 정상에 오르다니, 그것도 엄마랑 같이.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겪지 못할 경험이었다.
성인이 가만히 서있어도 날아갈 듯한 바람이 불었지만, 가방에 싸간 차갑게 식은 도시락과, 기압 차이로 익지도 않는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까르르까르르 웃음이 피어났다. 우리 셋은 이미 나이를 초월해 친구가 된 듯했다. 희로애락을 겪으며 등산을 한 든든한 동지애가 느껴졌다.
그리고 하산을 하면서도 우리는 역시 서로의 체력 이슈로 따로따로 내려갔다. 또 내려가면서도 중간중간 만나긴 했지만 거의 등산의 2/3 정도는 셋다 혼자 등산한 셈이었다. 내리막 길도 만만치 않았다. 끝날 듯 끝날 듯 도착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한라산이 이렇게 길고 높고 힘든 줄 알았으면 정말 등산화라도 신고 왔어야 했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 난이도가 더 높아진 것 같았다. 돌부리가 훨씬 많아 발목이 이리 꺾이고 저리 꺾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산하고 근육통에 시달려 거의 일주일 동안은 제대로 걷지 못했는데 신발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몇 미터를 남겨두고는 우리는 나란히 같이 만나 걸었다. 너무 힘들어 대화도 사라졌었지만, 이내 도착지에 함께 도착하면서 우리가 해냈다는 마음 하나로 짜릿한 성취감을 나눴다. 완등을 하고 나면 안내소에서 한라산 등정 인증서를 나눠 주는데 내 이름이 박힌 인증서를 받고 나니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어느 산이라도 등산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 거리는 왕복 20km였고 획고는 1950m였다. 나랑 엄마의 등산 시간은 총 9시간이었다. 그렇게 길게 하루를 다 써가며 등산을 한 것은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등산이 끝난 후 나는 엄마의 컨디션이 매우 걱정되었다. 젊은 나도 힘든 등산이었다.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 무리를 한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보다도 더 쌩쌩했다. 되려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뛰었다. 심지어 다음날 그다음 날에도 나보다도 훨씬 컨디션이 좋았다. 엄마도 등산화 없이 그냥 단화신고 올라갔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생애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등산에 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초인적인 힘이 생겼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때 엄마랑 한라산을 다녀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5년이 지난 지금 엄마는 허리통증이 더욱 심각해져, 이제 걷는 것도 많이 무리가 되었다. 만약 그때 엄마랑 한라산을 가지 않았더라면, 고작 5년 사이에 엄마는 영영 한라산을 못 가 볼 뻔했다. 엄마도 그때 내가 함께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아마 영원히 못 갔을 거라고 했다. 딸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완등은 꿈에도 못 꿨을 거라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같이 출발했지만, 따로 올랐고, 또다시 같이 내려왔다. 사실 함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각자의 등반이었을지라도, 그래도 중간중간 쉴 때 함께하고 함께 좋은 경치와 경험을 나누면서 우리는 동지가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와 함께 하는 동반자가 나와의 보폭을 맞추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답답해하거나 섭섭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꼭 나의 보폭을 맞춰 주어야지만 사랑은 아닐 것이다. 서로의 페이스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보폭을 배려해주는 것이 진정 서로를 위해 주는 길이 아닐까. 미리 앞서 간 사람이 조금 기다려 주고, 뒤처진 사람은 조금 더 힘내서 걸어주는 것. 함께 같은 길을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함께 하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내가 본 풍경을, 내가 걸어온 이 길을 곧 뒷사람도 함께 느낄 테니 서로 꼭 보폭을 맞춰야만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눈에서 가끔 보이지 않아도 마음은 느껴졌다. 우리가 함께 가고 있다고 말이다.
서로의 인생 페이스가 다른데 억지로 함께 걷다 보면 불만이 생기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결국 낙오자가 발생할 수 있다. 자유롭게 자신이 갈 수 있는 페이스대로, 하지만 또 서로를 의지하고 걱정하면서, 그렇게 함께 걷기도 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느끼면서, 인생을 완성해 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 각자의 이기심으로 서로에게 보폭을 맞춰달라고 했다면, 아마도 정상까지 가지 못했을 엄마와 나의 한라산 등반처럼 말이다. 함께, 때로는 따로, 하지만 또 같이. 그것이 인생을 함께 걷는 동반자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이왕 시작한 등반 길 지금 아니면 함께 오르지 못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