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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Sep 18. 2024

일구지 않는 밭인데 잘 자라는 이유

아빠는 주말 농장을 하신다. 정확하게 말하면 텃밭 가꾸기.

집 근처에 자그마한 땅을 빌리시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챙기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식물 키우기에 대한 아빠의 관심이 줄어들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밭에 있는 식물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제법 맛도 있었다. 어떤 분은 우리 밭을 보시고 "저 밭은 물도 제대로 안 주고 관심도 안 주는 것 같은데 왜 잘 자라지?"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아주 싱싱하게 잘 자랐다. 옆에서 밭을 일구시는 분은 정말 애지중지 긴 시간을 들여서 키우시는데 억울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 밭의 일화와 유아교육을 연관 지어 생각하였다. 아이들에게 지나친 관심을 주지 않아야 한다. 적당히 아이가 잘 자랄 수 있을 정도의 관심을 주어야 한다. 아이는 어른보다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많다고 생각하다 보면 이것저것 다 챙겨주게 된다. 늘 챙김만 받은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면, 누군가에게 심하게 의존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저 아이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이해하고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식물도 지나치게 햇빛을 많이 주면 금방 마르고 시들게 된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고인 부분이 많아져 썩는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적당히가 중요하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 셔서 아침에 보고, 저녁때 보는 게 다였다. 그래도 함께 있을 때마다 관심을 주셨다.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성적에 대해서도 너무 심하지 않은 한 그렇게 크게 간섭하지 않으셨다. 내가 워낙 공부를 하는 것보다 노는 것을 좋아해서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부모님은 공부하는 부분에서는 많이 강요하지 않으시는 편이었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선택권을 주셨다. 나의 인생이니,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7살인 내가 학습지를 하고 싶어 하자, 끝까지 할 자신이 있으면 시작하라고 하셨다. 그런 조건을 걸고 학습지를 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흥미를 잃은 나는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엄마는 결정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끝까지 학습지를 하게 하셨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책임'의 무게에 대해 깨달았다.


잘 일구지 않는 밭인데 잘 자라는 이유. 잘 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관심을 덜 주었지만, 정말 필요할 때 거름을 주고, 정말 필요할 때 영양분을 주고 해충을 없애는 그런 정도.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정말 알아서 잘 클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더 컸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양육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아이의 인생은 그 아이가 살아가야 한다. 독립심이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하려면, 어렸을 때부터 선택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정말 아이를 위해서라면 혼자 할 수 있는 건 도전할 수 있도록 믿음을 가지고 두어야 한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그렇게 자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해보겠다고 말을 했고, 부모님을 그 모습을 지켜봐 주셨다.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는 요청을 드렸고, 그때마다 지원을 해주셨다. 학업적인 부분에서도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억압을 하지 않으신 부분이 감사하다. 적당히 성적을 받는 편이라 신경을 안 쓰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적에 대해 깐깐하게 요구하시지는 않으셨다. 적당한 관심을 주셔서 감사하다.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도전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심에 감사하다.


1. 책임이라는 무게를 언제 처음 느꼈나요?


2. 인생을 돌아봤을 때, 일구지 않는 밭인데(딱히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잘 자랐던 적(진행되었던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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