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시절, 코로나가 어느 정도 완화되고 대면 수업을 들으러 간 날 한 교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교수님은 나에게 미소가 없어졌다며 걱정을 하셨다.
나는 큰 충격의 사건 이후로 웃음을 잃었다. 한순간에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니, 온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다. 슬프게도 한동안은 트라우마에 잡혀 살기도 하였다. 웬만한 장난으로는 웃을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웃는 것도 복이었음을.
지킬 앤 하이드처럼 가면을 쓰고 다녔다. 사람들과 있을 때는 한바탕 웃다가도, 집에 가면 가면을 벗고 하염없이 멍하니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미소를 잃은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엄마는 억지로라도 하루에 3번 정도 "하하하하" 하며 복식호흡으로 웃는 것을 권유하셨다. 열심히 웃다 보면, 웃는 것을 노력하다 보면 뇌가 착각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정말 다행인 것은 학교 선배 언니가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매일마다 좋은 말을 해주고, 성경 말씀이나 찬양을 추천해 주었다. 직접 우리 동네에 와서 함께 놀기도 하고, 대면이 어려우면 비대면으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점점 웃음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정말 잘 웃는다. 정말 툭하면 웃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웃는다. 과거에 소중한 사람이 떠나갔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일까? 그냥 웃기로 했다. 뇌가 행복하다고 착각할 정도로. 사실 지금 정말 행복하다. 내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 덕분에 하루하루가 재밌다.
이전에는 순수하고 해맑고 풋풋한 웃음이었다면, 지금은 이전보다 성숙하고 맑은 웃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머리가 하나 더 커졌으니 말이다.
한창 힘들 때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였다. 괜히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 같았다. 다른 누군가보다는 나에게 집중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나 말고 다른 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고 회복이 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지금은 일부로라도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주변 사람을 만나고 다니면서,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덕분에 나의 웃음도 되찾을 수 있었다. 함께하는 그 순간에는 걱정, 고민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오로지 상대방과의 대화에 집중하니까.
요즘 사람들은 나에게 얼굴빛이 많이 환해졌다고 이야기한다. 웃음기를 되찾은 모습이 티가 나는 것이다. 다시 웃음을 찾음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 감사하다. 무엇보다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내게 해 준 선배가 있음에, 그 선배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신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