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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Sep 25. 2024

깜깜한 어둠 속의 빛 한 줄기

나는 깜깜한 어둠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센 표현으로는 싫어한다는 게 맞겠다. 밤이 무서웠던 나는 어린 시절, 합창단 연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가족 중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는 했다. 그게 엄마든, 아빠든, 오빠든. 주로 가장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안 받으면 오빠에게. 아빠는 분명 꿈나라에서 달토끼와 함께 계실 테니. 오빠는 귀찮은 듯이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오빠, 엄마랑 아빠 쿨쿨?"


"어, 자는데? 왜 전화했는데? 설마 밖에 깜깜해서 무서워서 전화했어?"


"응 맞아. 나 집 들어갈 때까지 전화해 줘."


"(귀찮은 듯이) 아니 뭘 깜깜한 게 무섭다고 그러냐? 얼른 들어와. 나 잘 거야."


"오빠, 나 무서운데 집 문 좀 열어놔 주라. 엘리베이터 올라가고 있거든?"


"별 거를 다 시키네."


오빠는 귀찮은 듯이 툴툴대다가도 내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통화를 해주고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오빠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츤데레'라고 할 수 있겠다.


깜깜한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전화 한 통은 그야말로 한 줄기의 빛이었다. 숨통이 막히는 것 같다가도 전화 하나면 마치 이 세상을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당당함이 생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화 하나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다. 생명의 전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 도무지 힘을 낼 수 없을 때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 그렇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전화 하나로 연결되고는 한다.


때로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빠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때, 전화로 더 귀찮게 굴어볼 걸 하며 말이다. 밤에 집에 혼자 들어가기 무서우니까 전화 좀 받아달라며 귀찮게 굴어볼 걸 그랬다. 그것을 핑계로 요즘은 괜찮은지 물어볼 걸 하며 지난 과거를 후회해보기도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엄마가 오빠를 만나러 갈 때, 함께 갔다는 점이다. 반찬을 가져다줄 때나 잠깐 얼굴을 보러 갈 때 엄마의 껌딱지인 나도 함께 가서 오빠를 보았다. 지나간 과거를 돌이킬 수 없으니, 현재 살아있는 동안에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안부 묻기. 전화를 걸어서 잘 살아있는지 확인을 한다.


"여보세요. 잘 살고 있어?"

"어어 왜 전화했어? 무슨 일이야?"

"아니 그냥 전화해 봤어. 잘 살아 있나 하고."


전화보다 카톡 같은 메신저를 선호하는 내가 전화를 건다면, 그 사람은 뭔가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언제 전화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이. 누군가의 안부를 물을 수 있음에,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음에 감사하다.


1. 누군가와 전화를 하면서 힘을 얻은 적이 있나요?


2. 사람들에게 전화를 통해 힘을 준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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