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둘째인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무엇이든 어중간했으니까. 오빠는 첫째라서 예쁨 받고, 동생은 막내라서 보호받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만 했다. 다른 집의 둘째들도 그렇겠지?
하필이면 오빠가 공부를 잘했다. '하필'이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그래서 내가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다. 오빠가 워낙 잘하니 아마 나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빠와 다르게 공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전 과목 문제집을 사주셨는데 하나도 풀지 않아서 전날 엄청 혼나며 풀었던 기억이 있다. 참 신기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성적 우수상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둘째'인 것에 대한 불만보다는 장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오히려 둘째여서 딱히 큰 관심도 없는 것 같고, 내 의견을 거침없이 주장할 수 있었다. 할 말 하는 당당한 성격의 나는 정말 매를 맞아가면서까지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이런 성향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도전해 보는 그런 성격.
둘째로 자라서 생각보다 생활력이 강하다. 부모님이 맞벌이 부부셔서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편인 동생을 챙겨주던 그 시절. 나는 잠시 아이의 엄마가 된 것처럼 알뜰살뜰 잘 보살폈다. 동생과 잘 지내다가도 내 사랑이 동생에게 빼앗기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당당하게 사랑을 요구했다. 나도 사랑이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중간에서 여차저차 나만의 방법으로 살아남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이 고팠다. 그것도 아주 많이. 목말랐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첫째는 첫째라서 예뻐하고, 막내는 막내라서 예뻐하는데, 그럼 둘째는 도대체 뭐지라고 생각하며 불만을 갖고 있었다. 정말 감사한 것은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외가 친척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워낙 수다쟁이에다가 정이 있는 성격이라서 어른들에게 문안 인사를 꾸준히 하고, 이야기를 잘 나누는 편이었다. 그래서 지나가다가 멈춰서 사랑받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가다가 멈춰서 사랑을 받았다. 덕분에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채워졌다. 아이는 어렸을 때 사랑받은 기억으로 미래까지 살아가는데, 나는 충분히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둘째는 스스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잘 찾는다. 어떻게든 자기만의 방법으로 살아남아야 하니, 본인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환경의 영향이 크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면, 둘째인 경우 그것이 크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녀의 이야기에 귀담아주시던 엄마 덕분에 좋은 쪽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미래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인생의 갈림길을 내가 선택하고 싶었다. 부모가 정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나만의 삶을 나아가는 것. 둘째로 살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견딜 수 있는 내성을 기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이다. 둘째도 되어보고, 첫째도 해봤다. 부득이한 사고로 먼저 하늘의 예쁜 별이 된 첫째.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집의 장녀가 되었다. 아빠는 나에게 이제 내가 첫째라고 이야기하셨지만, 엄마는 둘째로 남아달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위에 등대 같은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지니 부담감이 좀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걱정이나 불안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할 수 있다는 믿음, 신이 내 삶을 잘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방법이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샌드위치에 비유하자면 둘째는 속 알맹이다. 겉에 싸여 있는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맛있는 속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둘째는 찬밥 신세이지만, 다른 집의 둘째는 보물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이런 취급이든, 저런 취급이든 스스로 자신을 빛나는 보석이라고 생각하자. 세상에서 가장 쓰임 받는 존재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샌드위치의 속 알맹이처럼 맛있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빛날 수 있으니까. 별처럼 예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