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많은 어른들의 손길을 닿으며 자라서인지, 나는 정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족과 관련 없는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잘 울지 않지만,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면 참 신기하게도 누가 눈물 버튼을 누른 것처럼 눈가가 촉촉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나누는 게 일상이었던 나는, 나눔을 하는 게 익숙하였다. 내 용돈의 절반 이상을 동생의 간식을 사주는 데 썼다. 그리고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명품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해주었다. 아이브로우가 떨어졌을 때 기억하였다가 엄마에게 선물해 드리고, 속옷이 찢어진 아빠를 생각하며 속옷을 사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동생에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먹을거리를 하나씩은 꼭 사들고 왔다. 오빠를 빼면 안 되니, 오빠의 몫도 챙겼다.
어린 시절, 엄마가 없을 때 내가 엄마의 역할을 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 집안일이 나에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중학생 때는 집에 돌아오면 빨랫감을 가지고 손빨래를 하기 시작하였다. 세탁기에 그냥 돌리면 옷감이 빨리 망가진다는 엄마의 말씀을 귀담아들은 것이다. 얼마나 손빨래를 했는지, 그 어린 나이에 주부 습진에 걸리고 말았다. 어느 집은 엄마가 빨래를 해준다는데, 이미 물이 손에 많이 닿아서 쭈글쭈글해진 엄마에게 빨래를 해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게 딸로서 최선이었다.
나는 우리 집 막내에 비해 애교가 조금 있는 편이다. 직접적인 애교보다도 뭔가 졸졸 잘 따라다니며 사랑받는 그런 사람. 나는 아직까지도 엄마를 잘 따라다닌다. 예전에 비해서는 조금 덜하지만, 이만하면 잘 따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들 같은 딸이다. 여자가 남자로 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집에서 든든함을 맡고 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나르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나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특히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나 기술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어느 집 장녀이든 이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집 딸들은 부모에게 어떻게 하고 사는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양육자 밑에서 자라는지에 따라 다르다. 대체적으로 우리 집은 사람을 조금 강하게 키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도전할 수 있게 기회를 준다. 넘어져도 괜찮다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고 한다. 이런 환경 덕분에 가정에서도 든든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점점 드니 욕심이 없어진다. 뭔가 갖고 싶은 그런 욕심. 가족에게 잘 나누는 편인 나에게는 욕심이라는 단어가 멀게 느껴진다. 배우고자 하는 욕심, 일할 때 열심히 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있다. 이것 또한 가정에서, 양육자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한 가정의 딸로서 내가 잘하고 있나 의심이 들 때가 있었는데,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다 보니 그래도 잘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만하면 다행이구나 하며. 재산 상속*돈 관련해서 같은 핏줄과 싸울 정도로의 돈 욕심이 없는 편이라서 다행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도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와서 다행이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든든한 딸이라서 다행이다. 어떤 날에는 그것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