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이성적인 엄마에게 다른 사람들처럼 내 말이 공감해 달라며 서운함을 표현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은 나보고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데, 왜 엄마는 안 해주냐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보다, 엄마한테 칭찬을 듣고 싶단 말이야!"라고 소리치며 방문을 크게 쾅 닫고 나갔던 어린 시절. 누가 그렇게 문을 크게 닫으라고 가르쳤냐는 한 마디에 "내가 아니라 바람이 그랬어!"라며 핑계를 댔던 그 시절. 공감은 곧 관심, 관심은 곧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엄마의 이성적인 답변은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성적인 대답도 관심이고, 사랑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 심리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예전에는 힘들어도 다 이렇게 사는 거라며, 자기 자신에게 합리화를 했던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조금이라도 표현을 해볼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힘들면 모르는 누군가에게도 털어놓을 수 있는 방법도 있으니 말이다.
공감은 사람을 살린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네 탓이 아니라며 어깨를 두드리면 왠지 모르게 다시 이 세상이 따뜻해져보이고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에게서 듣는 공감과 위로가 아니더라도, 책과 다른 좋은 글에서도 공감을 받기도 한다.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참 신기하게도 나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책에 담겨 있다. 책을 읽음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부분을 할 수 있다고 마음 다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있다. 그리고 내가 위안을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기도 한다.
공감은 변화의 첫걸음이다. 정말 피폐하게 사는 것 같은 어두움에 휩싸여 있을 때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공감마저도 듣고 싶을 것이다. 왠지 모를 따스함이 묻어 나오는 것처럼 느끼면서 말이다. 그만큼 누군가의 말에 동의하고 인정하고 들어주는 것은 중요하다. 나의 삶을 돌아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달을 때가 있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배움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