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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Oct 28. 2024

가정에서의 위치, K 장녀의 이야기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직급이 있다. 회사, 교회, 가정까지도. 나는 집에서 장녀다.


정이 많은 어른들의 손길을 닿으며 자라서인지, 나는 정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족과 관련 없는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잘 울지 않지만,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면 참 신기하게도 누가 눈물 버튼을 누른 것처럼 눈가가 촉촉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나누는 게 일상이었던 나는, 나눔을 하는 게 익숙하였다. 내 용돈의 절반 이상을 동생의 간식을 사주는 데 썼다. 그리고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명품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해주었다. 아이브로우가 떨어졌을 때 기억하였다가 엄마에게 선물해 드리고, 속옷이 찢어진 아빠를 생각하며 속옷을 사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동생에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먹을거리를 하나씩은 꼭 사들고 왔다. 오빠를 빼면 안 되니, 오빠의 몫도 챙겼다.


어린 시절,  엄마가 없을 때 내가 엄마의 역할을 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 집안일이 나에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중학생 때는 집에 돌아오면 빨랫감을 가지고 손빨래를 하기 시작하였다. 세탁기에 그냥 돌리면 옷감이 빨리 망가진다는 엄마의 말씀을 귀담아들은 것이다. 얼마나 손빨래를 했는지, 그 어린 나이에 주부 습진에 걸리고 말았다. 어느 집은 엄마가 빨래를 해준다는데, 이미 물이 손에 많이 닿아서 쭈글쭈글해진 엄마에게 빨래를 해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게 딸로서 최선이었다.


나는 우리 집 막내에 비해 애교가 조금 있는 편이다. 직접적인 애교보다도 뭔가 졸졸 잘 따라다니며 사랑받는 그런 사람. 나는 아직까지도 엄마를 잘 따라다닌다. 예전에 비해서는 조금 덜하지만, 이만하면 잘 따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들 같은 딸이다. 여자가 남자로 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집에서 든든함을 맡고 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나르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나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특히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나 기술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어느 집 장녀이든 이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집 딸들은 부모에게 어떻게 하고 사는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양육자 밑에서 자라는지에 따라 다르다. 대체적으로 우리 집은 사람을 조금 강하게 키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도전할 수 있게 기회를 준다. 넘어져도 괜찮다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고 한다. 이런 환경 덕분에 가정에서도 든든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점점 드니 욕심이 없어진다. 뭔가 갖고 싶은 그런 욕심. 가족에게 잘 나누는 편인 나에게는 욕심이라는 단어가 멀게 느껴진다. 배우고자 하는 욕심, 일할 때 열심히 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있다. 이것 또한 가정에서, 양육자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한 가정의 딸로서 내가 잘하고 있나 의심이 들 때가 있었는데,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다 보니 그래도 잘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만하면 다행이구나 하며. 재산 상속*돈 관련해서 같은 핏줄과 싸울 정도로의 돈 욕심이 없는 편이라서 다행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도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와서 다행이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든든한 딸이라서 다행이다. 어떤 날에는 그것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1) 가정에서 나의 위치는 무엇인가요?
2) 내가 있는 자리에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감사함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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