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친구, 아르바이트(리코타 치즈)

밀키웨이 치~이~즈

by Gourmet

밀크 인 더 치~이~즈, 밀크 인 더 치~이~즈.


나의 아르바이트는 냉기가 푸른 하늘을 가득 감싼 2월에 시작해 다시 돌아온 겨울을 맞은 1월에 끝났다. 나에게 아르바이트는 코끝에 머문 냄새로 기억된다. 첫번째 아르바이트는 어느 일식집과 투고샐러드였다. 수능이 끝난 방학이라 시간은 넘쳐났고 투잡을 뛰었었다.

한 달을 일한 일식집에서는 앉을 수 없는 상태로 7시간 동안 서 있어서 매일 밤 근육통에 몸부림치다 잠들었던 기억과 한 직원의 텃세에 나를 위로해주던 아르바이트 동료들, 세탁기를 돌려도 옷에서 빠지지 않는 생선튀김 냄새가 파편이 되었다. 고된 기억은 강렬하기 때문에 기억이 통채로 사라지곤 하니 이제는 어렸던 우리들을 기특하게 여겨주신 손님들이 팁을 줬던 추억으로 남게 됐다. 아, 또 하나 있구나. 이곳에서 서비스직 미소를 갖추게 되었다.

투고샐러드에서는 사장님이 가게를 접으실 때까지 일했다. 이곳은 오히려 일하러 가는 것이 꽤나 즐거웠다. 이번에는 손님들에게 진짜로 웃을 수 있었다. 가게만 소유하고 모든 것을 우리의 재량에 맡긴 사장님은 매월 제때에 월급을 주시는데다 친절했고, 4년을 일한 4살 차이가 나는 고인물 언니는 모든 걸 다정하게 알려줬다. 점심으로는 샐러드 메뉴를 한 가지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사장님께서 알바생에게 주신 작은 특권이랄까? 참치마요 위에 스리라차스파게티 소스를 뿌리면 더 맛있다며 계란볶음밥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이따금 고기가 최고라며 고기를 구워주는 언니를 보면서 나도 동생들에게 이런 어른이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투고샐러드에 출근하는 날은 일요일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의 업무는 청소부터였다. 가게를 대걸레로 한 바퀴 둘러주고, 헹주를 빨아 모든 테이블을 깨끗이 닦고 나면 손을 씼고 채소를 다듬었다. 물에 헹구고 탈수한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다지는거다. 띠링, 주문이 들어오면 각 메뉴의 레시피에 맞게 달걀, 올리브, 할라피뇨, 옥수수, 양파, 적양배추 등을 보기좋게 배치한다. 메뉴를 보내고 나면 다시 재료들을 바로 나갈 수 있는 상태로 준비한다. 이 때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3~4시쯤 리코타치즈와 단호박스프를 만드는 시간이다. 내가 손님이었을 때에는 이런 것들은 완제품을 사와서 데우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모두 수제였다. 우유를 터서 끓이고 레몬즙을 넣으면 금방 덩어리가 뭉치면서 치즈가 만들어지는다. 겨울의 건조한 공기에 향이 더 쉽게 퍼졌고 공간을 가득 채운 고소하면서도 포근한 그 냄새를 맡으면 편안해져서 금방이라도 잠에 들 것만 같았다. 꿈이라는 단어가 향기가 된다면 분명 이런 우유향일 것 같다. 이 향수의 제목을 정한다면 '밀키웨이 치즈'가 되겠다. 단호박 스프를 끓이는 향기는 또 어떤가. 뭉근하고 눅진하고 달달한 스프의 질감이 향으로도 느껴진다. 가을의 낙엽과 햇빛에 녹은 달고나, 우유의 향의 조화는 만들어봐야만 담을 수 있는 향이다. 이런 향들을 맡으면 간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슬프게도 내가 사랑했던 장소는 여름이 되어 다른 샐러드 프랜차이가 우수수 생기며 줄어든 매출에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접는 결정에 사라지고 말았다. 나에게 따뜻한 20살의 시작을 열어준 곳이 사라진다는 것은 꽤나 슬픈 일이었다.

두번째 가게는 샐러디였다. 금방 물러져 버리는 채소를 다루는 특성 상 샐러드 가게는 정말 깨끗하게 관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또 샐러드 가게에서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곳은 도청 근처로 점심이면 전화기가 쉴틈없이 울렸다. 이곳은 전보다 빡센 곳이었다. 모든 사항을 FM을 요구하셨는데, 막상 근로계약서는 써주지 않는 사장님이었다. 그래도 이곳에서도 마음에 드는 냄새를 발견했다. 여기는 대부분 완제품을 사용하는 곳이라 그리운 치즈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지만 전가게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견과류가 있었다. 비슷한 시간대에 호두, 해바라기씨앗, 호박씨앗, 저민 아몬드 등 견과류 믹스를 오븐에 넣어 한 번씩 구워주는거다. 기름을 가득 품고 있는 견과류가 뜨거운 오븐에서 구워지며 내는 고소한 향기는 산에서 맡는 열매의 향들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이 향을 맡으면 아 내가 집에 갈 시간이 절반이나 왔구나하고 느꼈다. 향이 시계가 된다니 소소한 낭만이다. 이빨에 끼는게 싫어서 견과류를 잘 먹지 않는 나임에도 이 냄새를 맡으면 주식으로 견과류를 먹는 다람쥐가 되는 상상을 하고만다. 여기도 다시 겨울이 되면서 손님이 뜸해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은 알바를 하지 않고 지내지만 매번 코끝이 시린 계절이 되면 이 향이 머릿속에 아른 거린다. 고되고, 포실하고, 춥고, 따스했던 모든 추억들과 함께.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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