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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를 아시나요?

by 떰띵두

친구들과 모여 앉아 평온한 풍경을 보면서 대수롭지않은 자잘한 수다를 제각각 피워 대던 중 엉뚱하게 내 머리는 나 홀로 떠돌다 한 곳에 머물고 서서 뿌연 창을 소맷부리로 슥슥 닦아내고 있었다.

우리들 사이에 존재했던 누적된 시간이 가져다준 선물 중 하나는 내가 이 무리 속에서 이처럼 딴짓을 하여도 그 누구도 나의 외도를 불편해하며 간섭하지 않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 친구를 만나는 것에 편안함이 찾아들었고 언제나 반가울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의 허락에 나는 혼자서 창을 들여다보며 배시시 웃게 된다.

지금의 이 상황과는 전혀 연관성도 없는 그 시절의 그 모습이 나를 찾은 것은 무슨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날의 모습을 찾아보는 지금 나는 극도로 행복해지고 있다.


'깐도리'

깐도리를 아시나요?


더운 여름날이었다.

찰떡같이 붙어 다니던 남동생과 둘이서 그 더운 날에도 우리는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흙먼지와 함께 삐직삐직 삐어져 나온 땀이 뒤엉켜 그 모양새가 참으로 우스꽝스러울 만큼 꼬질꼬질한 모습의 둘은 그래도 참 행복했다.

그 행복의 절정에는 우리 둘만이 아는 풍요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의 풍요 뒤에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음도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

우리에게 그 뒷배가 없었다면 아마 꿈꿔 보지 못할 큰 행복이었을 테니 말이다.

한참을 놀고 온몸에 땀내가 폴폴 풍겨나고 얼굴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폭발 직전이 되면 이맛빡은 흙먼지와 뒤섞인 꼬장물이 흘러내리고 그런 우리는 만족감에 서로 슥슥 대충 얼굴을 닦아 주면서 모정의 사인을 서로 주고받으면 우리는 둘이 서로 손을 꼭 잡고 당당히 찾아들어갔다.

그곳은 바로 형아들이 다니던 중학교 근처에 있는 분식점이었다.

지금에야 분식점이라 이름 붙일 수 있지만 그때의 환경을 살펴보면 학교 올라가는 길목 길가에 위치한 보루쿠벽에 슬라브지붕의 허름한 집에 간판도 없이 그냥 커다란 미닫이 유리문 앞에 얼기설기 적어둔 글자판이 걸려 있었던 작고 볼 품 없는 그런 상점이었지만 그 상점에는 없는 게 없었다.

거기엔 라면도 끓여주고 떢볶이도 팔고 과자도 팔고 어른들을 위한 막걸리도 팔고..

아무튼 별의별 것을 다 파는 분식점이었다.

그리고 그 분식점에는 모든 게 다 허름했지만 그중에 제일 짱짱한 것 하나는 바로 아이스크림 냉동고였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눈에 바로 딱 들어오는 자리에 듬직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던 아이스크림 냉장고.

우리에게는 이 커다란 아이스크림 냉장고 속에 하드가 가득 들어차 있을 때면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풍요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즐겁고 행복한 것은 이 냉장고 속에 들어 찬 하드를 나와 동생은 불편함 없이 꺼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한두 개지만 또 어떤 날에는 네다섯 개까지 꺼내먹었던 적도 있었다.

아마 내가 보는 이날도 우리는 벌써 한두 개는 이미 꺼내먹었음직한 무더운 하루였다.

우리는 가게 문을 얼고 들어가 소리친다.


'엄마! 우리 하드 하나씩 먹을께요' 라고 말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동생과 나는 손에 하나씩 하드를 집어 들고 가게 문을 뛰쳐나와서는 다시 형들의 학교 운동장으로 뛰어간다.

뛰는 우리는 행복한 함박웃음을 나누면서 어떻게 하면 더 맛나고 시원게 먹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날은 성질 급한 나는 급한 마음에 땅땅한 돌덩이 같은 하드의 껍데기를 벗기자마자 혓바닥을 가져다 데었고.

그 순간부터 혓바닥을 하드에서 떼어낼 수 없어 침을 질질 흘리며 아파 울었고 동생은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어떻게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지독한 쨍한 아픈 시간이 잠깐 흐른 뒤 하드는 나의 흘러내리는 침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나의 혓바닥을 내게로 돌려주었고 동생은 이런 나의 행동에 정보를 얻고 하드껍데기를 까고 하드표면이 허예지는 걸 확인하고 햇볕에 드디어 하드 색깔이 자기의 색깔을 찾아올 때쯤에 그때도 혓바닥을 데는 게 겁이 났었던 건지 그 하드를 이마빡이랑 볼따귀에다 마구마구 문지르며 극도의 시원함을 내게 자랑했다.

나는 동생이 천재라 생각하며 그런 행동을 하는 동생이 멋있어 보였다.

결국 우리는 이 날 동생의 하드로는 얼굴에 문질문질 팩을 했고 나의 하드는 한입씩 나눠 베어 물어가며 나눠 먹었다.

그리고 문질문질 얼굴팩이 되어 있던 하드는 더위에 흐르는 땀과 섞이면서 끈적끈적한 묘한 질감으로 또 다른 놀이 재미를 주었고 그 끈적끈적한 느낌에 따라오던 달콤한 팥내음.

아마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달콤한 행복일 것이다.


시커먼스 얼굴에 함박웃음으로 서로를 손가락으로 카리 키며 배 잡고 웃던 내 동생의 안부가 오늘은 참 궁금해 온다. 그 순간 번뜩 정신이 들고 그렇게 친구들의 수다에서 짧은 외도를 마치고 돌오 온 나는 이렇게 함께 앉아 풍경을 나누어 보고 서로 각자의 바구니에 담고픈 제각각의 행복들을 담아내는 지금 이 시각이 참 고맙다는 생각에 삔또 안 맞게 피식 혼자 웃게 된다.


그제야 친구들은 말한다.

'뭔 생각에 그렇게 또 웃냐? 같이 웃자!'

나는 답한다.

'응. 그냥 참 좋다!'

'너희들 깐도리 알아?'

......


우리의 공간은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고 한 시점 어느 날에 함께 모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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