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명절이었는지 아님 뭐 어버이날 이런 이름 붙은 날이었는지 그것도 아님 시집 장가간 아들 딸들이 모이는 어느 주말 하루였는지 모르겠다.
그날 아빠는 우리를 불러 모았다.
우리 아빠는 말씀이 거의 없으신 분이었다.
우리들에게 꼭 해야겠다 마음먹은 얘기만 하실 정도의 말 수가 적으시고 온화한 그런 분이셨다.
그런 아빠가 이날은 마당이며 이방 저 방 하물며 동네 마실 나간 오빠야까지 불러 모으셨다.
그리자 우리는 무슨 일인가 다들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상황이었고 아빠를 마주 보고선 빙 둘러앉았다.
그때 서랍에서 꺼내오셨던 까만 인조가죽커버의 노트였다.
저게 뭐지? 라며 다들 두리번두리번
서로에게 너는 저게 뭔지 아냐고 묻는 듯 두리번두리번.
그 누구도 아는 눈치가 없어 숨죽여 아빠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아빠는 속도가 좀 느렸음에 잠깐의 그 기다림도 우리는 민감했다.
아빠가 말을 꺼내기 전에 큰오빠야는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무슨 일 있는 겁니까?'라고
그러자 아빠는 우리에게 눈을 마주치며 말씀하신다.
'내가 너그들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모이라 했다.'
그러면서 꺼내 놓으신 까만 노트를 펼쳐 보이셨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플팍을 앞당겨가며 아빠가 펼쳐 놓은 노트를 살피기 시작했다
... ...
아! 생각났다.
이날이 설날이었던 모양이다.
아빠는 우리들의 조아리는 머리를 멈추시고는 음음 목소리를 가다듬으신 후 말씀하셨다.
'이거는 내가 작년에 적었던 가계부다.
첫날부터 막날까지 지출했던 내용을 적어 둔 거다.
일 년 내내 너거들 엄마랑 내가 쓴 전체금액이 거 적혀 있는 총액이다.
금액이 팔백삼십칠만삼천사백 원이다.
내용은 너거들이 살펴보믄 알겠지만 내가 너그들 한테 하고 싶은 말은 돈이 란 거는 버는 게 어렵지 쓰는 거는 쉽다 말이지. 너그들이 지금은 돈을 벌고 있으니 돈설움이 얼마나 큰지 모를 끼지만 돈은 벌 때 잘 관리해야 된다. 어째 내가 보기에 너그들이 돈을 막 대하는 거 같아서 이렇게 써서 보이 준다.
돈을 버는 게 어렵고 힘들듯이 쓰는 것도 어러워야 한다.
그래야 써야 할 때 쓸 수 있는 거다.'
우리는 아빠의 가계부를 보았다.
우리 오 형제 다들 결혼을 했으니 열 명의 자식이 함께 아빠의 가계부를 보았다.
축의금 100,-
조의금 100,-
콩나물. 1,-
고춧가루 38,-
못. 800
.
.
.
대충 이런 것들로 날짜와 요일까지 포함해서 빼곡히 적혀 있었다.
경조사부터 식재료 생필품 등등 아주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빼곡히 적힌 아빠 가계부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일 년 생활비 총액이었다.
좀 충격적이었다.
'팔백삼십칠만삼천사백 원"
... ...
만감이 교차했다
내 부모님의 애달픈 모습이 그려졌다.
내겐 두 어 달 치 생활비인데 이것으로 우리 엄마, 아빠는 일 년을 생활하신단다.
죄송한 마음이 저며 들었다.
우리는 제각각 그날 무언가를 느꼈을 터이다.
분명 그날 우리는 제각각 무언가를 생각했을 거다.
과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말하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그날의 생각이 우리 각자의 삶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 믿는다. 분명 이 날 아빠도 우리가 이것을 보고 무언가느끼길 바라셨고 어떠한 것이든 사는 자세가 조금은 변화하기를기대하셨을 것이다.
나는 이 날의 충격이 좀 오래갔었다.
충격은 오래 남았으나 나의 생활이 쉬이 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날 이후 내 가슴속에 내 머릿속에는 인이 박히듯 그날 내가 보았던 '팔백삼십칠만삼천사백 원'이 새겨졌다.
그 이후론 더 이상 아빠의 가계부는 볼 수 없었으나 친정집을 갈 때마다 나는 서랍장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그 까만 인조가죽 노트를 확인하곤 했었다.
그리고 몇 해 지나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나는 내 인생 처음 맞는 아빠와 이별이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빠의 옷가지를 정리하는 오빠들이 미울 만큼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듯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아빠의 그 가계부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찾아보았고 시간을 가지고 다시 또 며칠을 찾기를 반복했었다.
노트의 행방을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고 더듬었지만 아빠의 까만 가계부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빠가 떠나시고 몇 해를 나 혼자는 그렇게 찾아보았으나 결국은 찾지 못했다.
오빠들에게도 언니에게도 동생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그토록 열심히 찾는지를 말이다.
내가 왜 그토록 그것을 찾는지를 말이다.
결국 찾을 수 없었던 아빠의 가계부.
아빠가 손끝에 힘을 실어 꾹꾹 눌러써 두셨던 그 촘촘한 가계부.
쓰면서 참 많은 바람과 기도를 담았을 아빠의 가계부.
그것을 나는 결국찾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아빠의 사진도 몇 장 되질 않는데 아빠의 가계부를 지켜내지 못한 것을 나는 몹시 지독하게 후회하고 있다.
지금도 지켜내지 못한 그 가계부를 생각하면 속이 쓰리고 아려온다.
내게는 그것이 아빠였을텐데 말이다
나는 아빠의 그 가계부를 물려받지 못한 것이 화가 나 죽을만큼 아쉽다.
유달리 탐났던 아빠의 유산이었는데 너무 욕심을 냈던 것일까?
그래도 다행인 건 건망증 심한 내 머릿속에 그날 본 아빠의 가계부 한 면이 고스란히 박혀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