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내 기억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사실이 일상의 폭폭한 먼지를 털어내고 고개를 내밀적에는 내 일상도 매일의 그날들과는 다른 하루가 만들어진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지금의 나와는 비교되지 못할 만큼 팍팍한 일상을 살아내는 가난함의 연속이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뭐 호화찬란한 일상을 누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소득과 소비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그런대로균형된보통의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꽁무니 빠지게 마음이 급해지는 일이 잦다.
예전의 가난했던 나도 마음이 급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그런 기분이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나름 큰돈이 생긴 적이 있었다.
횡재수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일한 것에 비하면 꽤나 큰돈이 생긴 것이었고 이 때는 그래도 빚갚음에 한숨 돌리는 즈음이었지 싶다.
그러니 그런 배포가 생겼는 게 아닐까 한다.
배포?
앞으로 내 얘기를 들으면 배포란 말에 콧웃음을 칠지 모르지만 내게는 분명 그때 그날은 배포 큰 결정이었다.
그날 나는 내가 가진 것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었지만그렇다고 내게 결코 적지 않은 나름 큰맘 먹어야 될 만큼의 큰돈 백만 원을 엄마께 용돈으로 준비해 드린 적이 있었다.
만 원짜리 지폐로 잘 정돈해묶어 백만 원의 부피를 양껏 늘려 정성스레 준비했었다.
내심 큰돈임을 내색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준비한 처음이자 마지막 큰 용돈.
물론 남편의 제안으로 준비해 드린 용돈이었기에 한결 마음은 경쾌하고 가벼웠지만 그간 매번 부모님께 드려왔던 용돈의 범주를 벗어난 정말 큰맘 먹고 드리는 용돈이었다.
이 날 울 엄마는 우리 집 거실에 조그마한 모습으로 앉아 우리가 내민 하얀 봉투를 받아 드셨고 봉투를 열고 선 눈이 똥그레져서는 입을 크게 벌리시곤 놀람과 함께 감탄을 하셨다.
그리고는 고맙구나! 고맙구나! 라며 손을 잡고 고마움을 전해 주셨다.
남편과 나는 무척 뿌듯했다.
우리는 의기양양했다.
소위 우리도 울 엄마에게 효도란 걸 했는가 보다는 생각에 우쭐했었다.
엄마는 백만 원 현금 다발을 고이 속바지 주머니에 말아 넣으셨고 몹시도 행복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웃어 보이셨다.
엄마의 그 행복한 표정이 앞으로의 우리 일상에 쭉 이어질 거라 우리는 그때 착각했었다.
그랬음에 우리는 이참에 그 행복한 만족감을 더 이어볼 참에 서툰 생각으로 엄마와의 여행을 계획했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처음 있는 일이라 마냥 좋았다.
마냥 좋아도 될 만큼 그때 그 순간은 풍족했음에 그냥 좋을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그때 있을 수 있었음에 지금의 나는 몹시도 감사해한다.
그때 그 순간 찾아온 풍요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그런 용돈과 여행은 없었을 테고 그랬다면 지금 내게 무한한 풍요로움이 함께 한다고 해도 분명 나의 삶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황폐한 삶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여행을 떠난 것이다.
특별한 목적지를 두고 떠난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냥 차를 타고 동해 해변로를 달리다 그날의 여건에 맞춰 숙소를 잡아 쉬기로 하고 무작정 떠난 것이다.
울 엄마와의 처음 여행이었다.
경주에서 정성 담은 한정식을 먹고 보문단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따사로운 햇볕을 쬐고 자잘한 수다를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그리고 영덕에 도착했고 우리는 대게 코스요리를 먹었다. 엄마는 이날 그때 드렸던 용돈을 꺼내 썼다. 대게가 비쌀텐데 하시며 큰돈 쓰는 남편에게 귀하게 번돈 아껴 쓰라며 십만 원을 손에 쥐어 주셨던 거다. 남편은 마다하지 않았다. 혹 마다하여 엄마마음이 불편할까 엄마가주신 돈을 받았고 우리는 엄마덕에 귀한 음식을 맛나게 실컷 먹을 수 있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울 엄마도 참 맛나게 드셨다.
이게 돈 쓰는 맛이구나 느끼면서 ,
웃는 엄마모습, 맛나게 먹는 내 아이의 모습, 함께 웃어주는 언니,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하는 남편.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마냥 기분에 취해 시간을 보낼 즈음 엄마는 조금 쉬고 싶다 하셨고 우리는 서둘러 영덕 해변가 펜션을 숙소로 잡은 후엄마는 숙소에 쉬게 하고 밤 야경이 매혹적인 해변가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