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왕복이면 거의 세 시간에 가까운 거리를 오가야 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
자유와 낭만을 만끽한다는 명분하에 귀가시간이 점점 늦어져 막차를 타기 일쑤였던 대학시절,
나의 하굣길과 귀갓길에 언제나 나와 함께 해 주었던 엄마.
그 시간이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는지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숨 막히게 답답하고 때로는 짜증 나고 또 때로는 피곤했던 엄마의 마중.
엄마는 언제나 버스 정류장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나를 기다렸다.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잠깐잠깐 집에 가서 집안일을 보고 그러다 또 정류장에 내려와 시간 맞춰 도착하는 버스가 정류장 앞에 멈출 때면 목을 쭉 빼 늘여서는 이리저리 내리는 손님뿐만 아니라 버스 안 내릴 준비를 하는 손님까지 샅샅이 살폈다
그렇지만 내가 보이지 않으면 금세 다시 무슨 생각에 잠기는지... 그렇게 또 한참을 있다 버스가 나타나면 반복한다.
그러다 내 모습이 비치면 엄마는 금세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한껏 에너지를 끌어 모으고는 양껏 나를 반겨주었다.
통통 뛰는 청아한 목소리로 몹시도 반겨주었다.
그러고는 누가 낚아채기라도 할까 봐 내 책가방이며 도시락가방을 뺏어 들었다.
제법 묵직한 책가방에 덜컥하며 한순간 어깨가 내려 안아도 엄마는 웃으며 나의 머리를 나의 어깨를 쓰담쓰담해 준다.
'힘들었제.. 배고플라.. 괜찮았나..'
집으로 가는 길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집 가는 내내 엄마는 나의 안색을 살피고 나의 기분을 보듬어 주었다.
마냥 그러하니 나는 당연한 듯 이런 엄마에게 짜증을 내기 일쑤였고 투덜거리거나 침묵하거나 했다.
하지만 이런 나였지만 마중 나온 엄마를 보면 자동적으로 나는 습관적으로 언제나 엄마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생각이나 감정이나 기분과는 상관없이 나는 항상 엄마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엄마도 팔짱을 끼고 걷는 그 시간이 행복했음일까 내가 시집가기 전까지 언제나 그렇게 버스정류장 그 자리는 엄마의 고정석이었고 시집간 이후로도 집에 가는 날이면 언제부턴지도 모를 만큼 오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수십 번은 마을 어귀 길목까지 왔다 갔다를 반복했을 테고 그중 마지막 한 번이 우연히 마주친 것 마냥 그렇게 엄마는 나를 마중 나와주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이든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음은 축복이다.
마음 한편이 든든함으로 채워지고 내 뒷배가 태산 같으니 어디서든 어깨에 힘이 빠지질 않고 걸음걸음에 자신감이 붙으며 세상살이에 찌들어 기운 쳐질 때에도 밥 한 공기만으로도 금세 툭툭 털고 기운 차릴 수 있음이다.
그런데 살면서 급한 것에 목메고 살다 보면 늘 해오던 익숙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것을 잊을 때가 있는데 최근 내가 급한 것에 몰두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의도치 않게 허리 통증으로 잠깐, 아주 잠깐 올려다본 하늘이 눈물 나게 예쁜 걸 알아채게 되니 잊고 있던 이 뭉클함이 다시 나를 찾아 오게 된것이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것에 겁먹고 두려움이 앞서기보단 언제나 설렘이 먼저 찾아들고 알지 못하는 그 어떠한 것을 어떤 형태로 만나도 크게 거부감이나 방어적이지 않으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은 내게 언제나 함께 해준 엄마의 마중이 나를 이리 길들였기 때문이라 믿는다.
엄마의 길마중에 길들여진 나는 세상 사는 일이 힘들어도 좋고 즐거워도 좋고 아파도 참 좋다.
엄마와 함께 했던 수십 년의 그 귀갓길.
살며시 기대어 팔짱 끼고 걸었던 그 귀갓길.
아무런 일이 없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내 안부를 물어 주었던 그 귀갓길.
쓰담쓰담 톡톡 한 번에 노곤했던 하루를 보상받던 그 귀갓길.
이러한 엄마의 길마중 덕분에 나는 지금 그래도 참 괜찮은 사람일 거란 생각을 한다.
언젠가 엄마 있는 그곳에 내가 가는 날에도 울 엄마는 날 마중 나와 있을 거란 믿음에 누가 뭐라던.. 오늘이 어떤 하루여도.. 이 오늘이 나는 그냥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