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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Nov 11. 2019

22.혼자 있는 시간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혼자 있는 시간이 자주 필요하다.


외로움을 즐겨서가 아니라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해서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행위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좀 더 정확하게는 별 의미 없는 한 가지만 계속 생각한다.


머릿속의 잡생각을 비우려 대부분 이런 상황을 떠올린다. 창밖엔 비가 내리지만, 습기 없이 뽀송뽀송하며 약간은 까슬까슬한 듯 포근한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 상상. 또는 온통 초록빛이 가득한 숲속을 하염없이 걷고 있다거나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 내리쬐는 인적 드문 해변에 누워 낮잠을 겸한 일광욕을 즐기는 상상도 좋다. 잔디밭이 넓은 공원 벤치에 앉아 고개를 하늘로 젖히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얼굴로 만져보며, 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군무를 감상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런 상상이 생각에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될 때도 있다. 머릿속을 비워내는 ‘멍때림’ 시간은 마치 컴퓨터를 한번 껐다 켜는 재부팅 시간 같다. 발포 비타민이 상큼함을 전하려 거품이 되어 녹아 없어지는 순간 같기도 하며, 께름칙한 수돗물이 정수 필터를 지나며 맑은 물로 정화되어 쪼르르 컵을 채우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런 ‘멍때림’을 가지고 나면 어디선가 활력이 샘솟는다. 몸과 마음을 괴롭혔던 복잡한 생각이 하나둘 걸러지고 거품처럼 사라지며, 맑은 상쾌함만 남아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힘을 얻는다.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은 다시 뒤엉키고 탁해져서 리셋 버튼을 눌러야 하거나, 발포 비타민과 정수 필터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오늘 퇴근길에도 집 앞 선착장에 멍하니 앉아 뱃머리를 툭- 툭- 치대는 물결을 따라 하루 동안 쌓였던 잡생각을 흘려보낸다. 버린 만큼 채워지고 다시 또 비워내기를 쉼 없이 반복하더라도 혼자 있는 ‘멍때림’의 짧은 시간이 결국 나머지 시간을 살아있게 해주고, 움직이게 만들어 준다.


▶ 나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아주 잠깐이지만' 있긴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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