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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워홀러 Sep 03. 2024

영어, 이불킥 좀 찹니다.

이민 1세대의 당돌한 실무 에세이-영어

BCIT 신입생 때 나의 영어가 부족한 것을 진작에 간파한 한 학년 선배는, 당시 현직에 있는 그의 한 학년 선배를 소개해주었다. 내가 공부한 전공은 2년 과정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그분을 볼 수가 없었지만 현재는 자주 소통하는 사이. (또 지금은 문화가 사라졌지만, BCIT ABT학과는 학기 시작하는 9월마다 한국인 재학생-신입생 모임이 있었고, 학기 중 우리의 교류는 활발했다.)


두 해 선배도 나처럼 성인이 돼서 캐나다에 온 경우인데, 어렸을 때 이민 온 나의 1년 선배가 자신의 위아래 두 유학생의 동병상련 처지를 알고 연결시켜 준 것이다. 바로 연락처를 받아 그날 밤 카톡을 했고, 가장 궁금했던 사무실 영어에 대해 물었다.


돌아온 그의 답, 그때의 카톡이 너무나 강렬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을 아실까요?


성인이 돼서 캐나다에 온, 로컬 회사 외국인의 심정을 전한 엄청난 문장이었다.


캐나다의 한 유명 시공회사에서 수습기간이었던 그분이 당시 했던 업무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Sub-Contractor 리스트의 회사들 모두 전화를 걸어 간단한 사항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당시 사무실이 너무 고요해서 자신의 전화 목소리를 회사 내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상황을 회상했다. 나의 회사 첫 업무가 이런 환경 속에서 방대한 양의 전화를 돌리는 것이었다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건축 설계 회사는 신입 또는 저년차가 직접 외부와 전화로 소통할 일은 거의 없다. 업무의 Responsibility(책임감) 자체가 낮기도 하고, 궁금하거나 확인할 사항이 있다면, 선임 동료와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혹여나 외부로부터 확인이 필요하다손 치더라도 전화 대신 이메일을 쓸 수 있다.


하지만 현업에서 전화할 일이 적다는 것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저년차를 벗어난 이후까지도 외부와 전화 소통에 대한 부담감이 지속되는 것. 업무 중 전화를 받는 상황은 언젠가 찾아오게 돼있고, 이 경우가 바로 나에게 해당되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5년 차까지도 사무실에서 전화받는 것이 매우 초조했다.


회사에서 첫 전화를 받던 날은, 내 평소 심장소리가 그렇게 컸었는지, 전화가 끝나 수화기를 내려놓은 손은 왜 자꾸 떨렸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 선배가 먼저 매를 맞았다면, 나는 맞아야 할 매를 최대한 뒤로 미룬 격이다.


전화 영어보다는 긴장감이 훨씬 덜 하지만, 회의 영어도 다소 부담이 된다.


건축 디자인 회사 저년차는 미팅 때 발언량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질문은 언제든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회의 내 발언은 처음 몇 번은 반. 드. 시. 절게 된다. 쉬운 영어발음도 새고, 평소 알던 단어들이 바로바로 안 떠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벽을 뜻하는 Wall이라는 쉬운 단어조차도 긴장을 해버리면, 혀는 Warr로 소리내는 자신을 목격하게 된다. (한글 자음 ㄹ은 영어 L과 R 중간 어디쯤 소리다.)


하지만 한두 번 즈음 매 맞는 과정이다.


취업 후, 단 몇 번만 이불킥 시간들을 가지면 된다. 다행히 이불킥 사건들은 당사자인 나만 특별히 기억할 뿐, 미팅 때 함께 있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그 기억을 잊는다. 또 각자 바쁜 그들의 일상: 그들의 크고 작은 사연, 고민거리, 저녁을 무엇을 해먹을지, 또는 당장 마무리해야 할 닥친 업무 등에 내가 회의 때 절었던 발음들과 얼탔던 행동들을 애당초 그들의 기억 장소에 남겨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위 사건들만 제외하면 일반적인 건축 설계 회사 영어는 매우 평이하다.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영어 편에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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