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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Jul 16. 2017

깎아서 만든 영화 _ 영화 <택시운전사> 리뷰

일흔한 번째 지난주




조각(彫刻)적인 영화     


 구성요소들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은 요소 각각에 균등한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그 요소들의 합으로 온전히 전체가 된다. 어느 초창기 걸그룹의 이름이 그랬고, 몇몇 지역의 이름이 그러하며, 부모의 이름을 한 자씩 따온 어떤 아이들의 이름에도 이 같은 의도가 내재되어있다. 그리고 조소(彫塑)가 그러하다.     


 조소(彫塑)는 조각(彫刻, carving)과 소조(塑造, modeling)의 앞글자를 따서 명명함이다. ‘조각’은 나무나 돌과 같은 경질의 덩어리를 밖에서 안으로 깎는 방식이며, ‘소조’는 점토나 유토 등 가소성의 물질을 안에서 밖으로 붙여가며 표현하는 방법을 이른다. ¹     


 영화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조소를, 조각을, 소조를 굳이 언급함은 영화에 빗대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분명히 어떤 영화는 ‘조각’적이고, 또 어떤 영화는 ‘소조’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있었던 일을 재구성하여 영화화한 작품은 다분히 ‘조각’적이다. 반면, 새롭게 이야기를 창작하여 만든 영화는 ‘소조’적이다. 이중 ‘조각적인 영화’는 기존의 사실로부터 영화적인 선만을 남긴 채, 조금씩 깎아나가며 영화를 만들어간다. 지난주, 한편의 깎아서 만든 '조각적인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그 연마된 자국들에 대한 생각을 먼저 정리할 수 있었다. 전해본다.     



※ 일흔한 번째 「김태은의 지난주」에서는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개봉 전인 좋은 작품을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기억의 방식 _ 동행     


 온전한 사실이 있다. 그것이 명백한 비극인 탓으로 돌아보기에 너무 아플지라도, 그 봄날 그곳에서 벌어진 참극은 사라질 수 없다. 그래서 돌아본다. 영화를 하는 사람은 영화를 하는 사람대로, 소설을 쓰는 사람은 또 그의 방식대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 심지어 정치하는 사람도 다 돌아본다. 매체의 특성이나 나름의 소명을 살려 돌아본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이중, 특히 영화로 그 시간을 돌아보는 시도는 조금 더 조심스럽다. 영화에는 영화의 일이 있어서, 그것이 점진적으로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유도하곤 했던 오랜 습관 탓이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과 의의가 영화적 시도 속에 묻혀 버릴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마치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조심스럽게 깎아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연출자로서, (5·18이) 한국 현대사에 굉장히 비극적이고 슬픈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다루는 부분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부담도 많이 됐다. 그렇지만 보여야 하는 부분은 정확해야 한다는 판단하에 지금처럼 완성하게 됐다"

 - 영화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언론시사회 중 ²     


“영화 ‘변호인’ 때도 그랬어요. 그분(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에 누를 끼칠까 두려움이 앞섰죠. ‘택시운전사’에서도 똑같은 고민이 이어지더군요. 제가 부끄럽지 않게 광주의 아픔을 대중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부담감이 컸습니다. 정부 또는 특정 정치 세력을 의식한 정치적 부담감은 절대 아니었어요.”

- 영화 <택시운전사> 주연 배우 송강호 언론 인터뷰 중 ³     


 연출을 맡은 장훈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배우 송강호는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인지 그간의 그 날을 돌아보는 영화들과는 다소 다른 접근법을 선보인다. 바로, 주된 시선을 외부자에게 부여하는 시도를 들 수 있다. 서울의 택시기사와 독일의 기자가 바로 그들이다. 이 두 사람은 함께 광주로 향하지만, 광주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거나, 아예 무지한 상태이다. 관객 중 그 당시 내부자로 고통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면, 37년이 지난 오늘 날의 관객이 지닌 정보 수준과 이 둘의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희미하게 알거나, 아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르겐 힌츠페터나 김만섭처럼……. 곧 택시기사와 외신 기자 그리고 관객이 함께 택시를 타고 광주로 달려간다. 동행이다.    


 그리고는 참혹하디 참혹한 참상을 마주한다. 전쟁은 아닌데, 전쟁과 같은 처참한 풍경 앞에 두 사람과 관객은 모두 절망한다. 물론 이 같은 시도가 편리하게 그 시간을 이용했다는 혐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37년이라는 시간 속에 의식과 기억이 흐릿해져 가는 이 시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의 비극을 아예 처음 접하게 될 적지 않은 관객에게는 차라리 더 적절한 기억법은 아닐까? 광주의 외곽으로부터 차를 타고 들어가는 것부터 녹록지가 않았다. 1980년 5월의 일이었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자각의 순간 _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왜 분수대가 떠올랐는지 모른다. 짧게 감은 눈꺼풀 속에서 유월의 분수대가 눈부신 물줄기를 뿜었다. (…중략…) 책가방을 내려놓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주먹으로 훔치며 전화기에 동전을 넣었다. 114 버튼을 누르고 다시 기다렸다. 도청 민원실 부탁합니다. (…중략…)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 한강, <소년이 온다>, p.69 ⁴


 어떤 독서는 어떤 페이지에서 체한다. 걸려서 안 내려간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69페이지가 그랬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은숙의 단단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나.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오나.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럴 수는 없다. 마침 광주에 힘겹게 들어간 택시에서도 이 같은 자각이 일어난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광주의 참상에 당혹해 하면서도, 서울에 있는 딸에 대한 걱정을 한시도 놓을 수 없었던 만섭(송강호 분)은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가 잠이 들었다고 생각한 새벽녘에 광주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순천에서 택시를 정비하고, 허기를 달래며, 딸을 위한 선물까지 마련하여 서울로 가기 위한 모든 채비를 마친다. 그리고는 노래한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신나게 따라 부르는가 싶더니, 이내 목소리는 떨려오고 눈시울은 붉어진다. 잘은 모르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떤 대사도 없다. 처절한 회상신도 없다. 그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자각한 한 인간이 있었다. 그 인간의 떨리는 노래와 눈빛이 있었다. 만섭은 차를 돌린다. 단연코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 위대한 자각이 스크린을 넘어 영화관 구석구석까지 번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절제된 연출 _ 보여주지 않는 장면과 내면의 의미     


 상업영화의 러닝타임은 대개 2시간 내외로 정해졌다. 아무리 빼어난 감독도 이 통용된 시간으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 없거나, 굳이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 당연히 연출자가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은 한정된다.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 온전히 보여줄 장면만을 찍어 스크린에 전시하지 않는 한 연출자가 보여주는 장면과 보여주지 않은 장면이 있음이다. 그런데 의미는 보여주는 장면에만 있지 않다. 보여주지 않는 장면에도 의미가 있다. 그 장면을 왜 보여주지 않는가라는……. 


 동시대를 살아가지 않은 사람에게도, 혹은 살아갔던들 다른 지역에 있어 진위조차 파악할 수 없었던 사람에게도 1980년 광주는 마음의 부채로 남아있다. 그런 관객에게 외부인이 겪은 짧은 일화만으로 그 비극을 온전히 복기시킴은 애당초 가능할 수 없다. 연출자뿐 아니라 관객 중의 일부도 뻔히 알고 있지만, 보여주지 않은 그 당시의 장면들이 분명히 있다. 더 처절하고, 더 끔찍하며, 더 저항했던 모습이 있었음에도 <택시운전사>는 두 외부인의 시선과 그들이 만나는 사람과 사건만으로 한정하여 전한다. 잘못일까? 도리어 이는 이 영화가 이 영화로써 할 수 있는 소임을 정확히 다 한 것은 아닐까?         


 관객은 만섭과 힌츠페터와 함께 광주의 참상을 엿보았다. 그리고 함께 광주를 나와 공항으로 향한다. 그 이후에 더 전쟁처럼 벌어진 광주의 비극으로부터는 일단 발을 뺀 것이다. 하지만 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만섭이 공항까지 힌츠페터를 배웅하듯, 힌츠페터가 일본으로 건너가 사실을 전달하듯, 영화에 담기지 않은 장면들은 관객의 몫으로 남아, 보여주지 않은 장면의 실체로 향하게 한다. 주지할 바는 <택시운전사>가 욕심을 부릴 수 있는 장면과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이를 절제하였음이다. 이를테면 10년 전 작품인 <화려한 휴가>처럼, 슬픔 자체에만 매몰되어 비극이 눈물에 가리고 마는 우를 범하지 않은 것이다. 보여줄 수 있는 장면에만 집중하는 <택시운전사>의 절제하는 힘은 역설적으로 관객에게 확장의 여지로 돌아간다. 개인적 감상이지만, 나는 보여준 장면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하여 가슴이 아파왔다.


 절제하는 연출은 단지 사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인물의 내면에 대한 묘사에도 적용되었다. 제법 유명 배우인 토마스 크레취만을 섭외하고도 그의 이름값에 걸맞은 역할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들려온다. <택시운전사>에서 토마스 크레취만이 연기한 독일 기자 힌츠페터가 평면적으로 비치는 아쉬움은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힌츠페터 역시도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이 황망한 지경을 카메라에 담아내기에 바빴다. 그것도 죽음을 무릅쓰고서……. 그리고는 온전히 이 필름을 외부로 가져가는 사명만이 남았다. 그나마 구재식(류준열 분) 정도를 제외하면 말도 통하지 않고, 전화도 되지 않는 이국땅에서, 힌츠페터가 만섭과 뜨거운 우정을 나눴어야 했나? 그의 시선으로 잘 정돈된 감정선이 곳곳에 투영되었어야 했나? 힌츠페터를 입체적 인물로 그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저 그 난맥상에 던져진 한 줄기 희망으로서 그는 그의 몫을 다하였다. 넘치지 않는 절제된 연출이 작동한 탓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깎아서 만든 영화     


방학하는 날까지 그녀는 날마다 정류장 옆 공중전화 부스에서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손바닥에서 배어나온 땀으로 수화기가 끈적끈적 했다. (…중략…) 그만 전화해요, 학생. 학생 같은데 맞지요.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 한강, <소년이 온다>, p.97 ⁵     


 다시 <소년이 온다>를 빌려온다.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하라는 당부를 은숙은 들을 수 없다. 우리는 광주를 잊고 공부만 할 수도, 생업만 이어나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기에 ⁶ 훼손 이전의 상태로 온전히 돌아가지 않는 한, 계속해서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작가도, 어느 영화나 연출자도, 그 어떤 시인이나 정치인도 오롯이 그 기억을 홀로 감당할 수는 없다. 자신이 기억할 수 없는 부분은 다른 공동체에 의탁하는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기억에 충실함 역시도 소중한 기억법이다. 이는 마치, 자신의 소임을 다해낸 그 당시의 만섭과 힌츠페터와도 닮아있다. 영화는 영화의 기억을 한다.


 아직 완전한 진상규명과 어떤 자의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비극을 깎아 영화로 만드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다. 이 가운데 <택시운전사>가 <택시운전사>만의 방식으로 기억해낸 1980년의 광주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주는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고스란히 안긴 채, 다시금 그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 한편의 반듯하게 깎아서 만든 영화로 우리는 다시 광주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기억할 수 없다면, 발포 명령을 내린 자의 혐의 인정이 나오는 날까지만이라도 맹렬하게 기억하자. 내가 알기로 그자는 아직 살아있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참고

¹

 - 가나조각, 조소이론

 - http://www.sculpture.kr/joso/?uid=3&mod=document     


²

 - 아시아경제 티잼, 이은혜 기자, 2017년 7월 10일 자, “'택시운전사' 장훈 "비극적인 현대사, 다루기 조심스러웠다"”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71018585550969          


³

 - 한국일보, 김표향 기자, 2017년 7월 14일 자, “[문화산책] 송강호 “평범한 이들의 희망 전하고 싶다””

 - http://www.hankookilbo.com/m/v/7f49b8e76a444ccaa78548f06a3a9235     


⁴, ⁵, ⁶

 - 한강, <소년이 온다>, 창작과 비평사, 2014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네이버 영화, <택시운전사> (A Taxi Driver, 2017) 포스터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46469     


*, ***, ****

 - 네이버 영화, <택시운전사>, 포토

 -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46469     


**

 - 영화 <택시운전사> 1차 메이킹 예고편 화면 캡처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46469&mid=35116#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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