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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녕 Oct 24. 2021

미뤄온 질문에 이젠 응답할 때!

인생 질문, 고전에게 묻고 글을 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어.”


퇴직을 앞둔 60대 분의 고민을 들었다. 이런 고민은 2030세대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나이 들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알기란 쉽지 않나 보다. 하긴 2030세대도 미리부터 노후를 걱정하며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을 원한다. 세대와 관계없이 계속 묻게 되는 인생질문들이 있구나. 갑자기 호기심 발동! 또 무슨 인생질문들이 있을까? 지인들에게 연락했다. 직장을 다니고 일을 하면서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질문 5가지를 알려달라고. 왜 알려줘야 하냐고 묻길래 개인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연구주제라고 둘러댔다.


    갑작스런 설문이 귀찮을 법한데도 다들 고심해서 선별한 질문들을 보내줬다. 질문들을 모아보니 정말 다들 고민하는 게 비슷했다. 내가 뭘 하고 싶고, 뭘 잘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내가 지금 잘 성장하고 있는지, 특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괜찮은 사람인지 확인받고 싶어 했다. 또 회사 안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힐 때나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도 고민하고 있었다. 미래를 위해 돈을 많이 벌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삶이 일만으로 채워질까 봐 걱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이기 전에 그냥 한 인간으로서 잘 살고 있는지 묻고 있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인생질문들을 부여잡고 일하고 있구나! 그럼 각자 나름대로 답도 구했을까? 그들에게 묻기 전에, 나부터 답을 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기회에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보자. 연구라고 둘러댄 말이 현실이 됐다. 연구결과가 나오면 꼭 알려달라고 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자신이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질문에 다른 사람은 어떤 답을 내릴지 꽤나 궁금한 모양이었다. 곧 알려주겠다고 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정리하면 금방 끝날 일이었으니까.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 후로 2년이 흘렀다. 여전히 연구는 ‘진행 중’이었다. 사실 진행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방 한쪽 벽에 더덕더덕 붙인 메모지와 공책 2권에 한가득 아이디어만 적어놓았을 뿐이니까. 처음엔 금방 쓸 줄 알았다. 경험을 통해 얻은 답이 이미 머릿속에 있으니, 글로 써내기만 하면 될 일 아닌가. 3개월이면 충분하겠지 싶었는데 웬걸, 단 한 꼭지의 글도 완성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상사와 사사건건 부딪히면서부터, 내 답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거란 확신이 무너졌다. 이게 글을 쓰지 못한 첫 번째 이유다. 함께 일하는 사람과 갈등에 놓인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사람들과 여러 번 부딪히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나만의 노하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강적이었다. 게임으로 치면 고생고생해서 마지막 판까지 가면 나오는 적들의 수장 같았다. 이 수장을 꼭 이겨야 게임이 끝이 나지만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책에 쓰려고 했던 나만의 답들, 특히 회사 안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힐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으려면, 이 상사와의 갈등을 풀어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그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갈등은 내가 퇴사한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아파서다. 꽤 긴 시간 아팠다. 처음에는 알레르기만 문제여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병증이 심해졌다. 염증 때문에 기도가 막혀 호흡이 곤란할 때면, 병원으로 달려가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은 나날이 이어졌다. 일을 쉬면 낫는다는 의사의 권유에 회사도 관뒀다. 하지만 알레르기 증상은 여전했고, 다른 병까지 덮쳐 왔다. 이쯤 되니 연구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몸부터 챙겨야 했다. 하지만 알레르기 같은 만성질환은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서 먹는 것 말고 더 보탤 치료가 없다. 어지러워서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도 병원에서 많은 검사를 받아보면 항상 ‘정상’이라고만 했다. 병원만 믿고 몇 년을 보내다가 문득 스스로 몸을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몸 공부를 해야겠구나! 이번 생애에 의학대학을 들어가긴 불가능할 테고, 책 한 권이라도 읽어보자. 그 책이 비록 ‘목차’만 100쪽이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동의보감』이지만.


    혼자 읽으면 얼마 못 가 포기할 게 뻔했다. 함께 읽어야 어떻게든 한 번은 읽겠지 싶어, 『동의보감』을 공부하는 세미나를 찾아갔다. 동양의학서를 읽다 보니, 자연스레 역학과 철학까지 공부하게 됐다. 사람들과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상사와의 갈등이 내 병과 연결되어 있음을, 더 정확히는 그 갈등을 해석하는 내 인식이 병을 만들고 있음을. 병을 만들고 키운 원인은 바로 내게 있었다.



현장과 고전의 만남을 글에 담다


인생질문들은 잊고, 몸을 돌보려고 공부했다. 그런데 공부하다 보니 그 질문들이 다시 날 찾아왔다. 그리고 물었다. 진짜 아는 거 맞냐고. 네가 철석같이 믿던 삶의 방식이 오히려 몸을 아프게 만들진 않았냐고. 최선이라 생각했던 말과 행동이 심신건강에 전혀 이롭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다르게 살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런데 어떻게?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천지라는 텍스트를 내팽개친 덕분에 사람의 길이 너무 협소해졌다는 것, 그것만 ‘알면’ 된다. 여기서도 핵심은 아는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왜 길이 막혔는지를 아는 것. 그러면 자연스럽게 길이 열린다. 아니, 어느 방향으로 발을 내디뎌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고미숙,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북드라망, 2019, 70∼71쪽)


    모두에게 맞는 답을 찾으려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장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만 여러 가지 상황들을 그려보고 대입하기를 반복했을 뿐, 정작 일상을 탐구하지 못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구체적인 현장을 들여다봐야 한다. 현장은 지금 맺고 있는 관계다. 일과의 관계, 꿈과의 관계, 돈과의 관계, 몸과의 관계, 부당한 관계, 그리고 이 모든 건 결국 사람과의 관계다. 관계마다 뭐가 어려웠을까. 또 지금은 어떤 일로 괴로워하고 있나. 최대한 구체적으로 스스로 묻고 살피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을 적나라하게 보는 방법으로 글만큼 좋은 게 없다. 내가 확신했던 답을 남에게 알려주려고 했을 땐 한 글자도 쓰기 어려웠는데, 내 문제를 들여다보려고 글을 쓰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고전도 함께 읽어나갔다. 현장을 새롭게 바라보려면 고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속에 시대를 넘나들며 천지와 인간을 연결하는 지혜가 있다. 시야를 천지까지 확장해야 기존의 인식이 얼마나 터럭만 한지, 얼마나 혼자 단단히 오해하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고전에게서 현장의 문제를 다르게 보는 시선을 배우면, 그동안 굳혀 왔던 길 외에 다른 길이 보인다. 전혀 새로운 길이.


 


한계가 기쁨이 되는 길 위에서 


지인들이 질문을 보낸 지 거의 5년이 다 돼서야 글을 완성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 위에서 쓴 글이지만, 모두 겪을 법한 일상의 고민에서 출발한 만큼 읽는 사람에게 더 가닿으리라 믿는다. 일상은 절대 소소하지 않다. 우리의 세계관, 신념, 시대상, 전제나 편견, 이 모든 게 일상에 펼쳐진다. 그래서 일상은 내 세계고 내 전부다.

글을 완성한 지금, 사람들에게 내 정답을 알려주면 도움이 되리라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여기엔 정답도 없을 뿐더러, 책을 다 쓴 지금도 내 머릿속엔 질문만 가득하다. 대신, 살면서 길을 잃었다 싶을 때, 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걷고 싶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마음만 답답할 때, 어떻게 길을 찾아가면 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구체적인 현장에서 시작해서 고전을 나침반 삼아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벽에 부딪힌다. 몸져눕게 됐을 때, 누군가가 너무 미울 때, 급작스럽게 환경이 변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될 때, 아무리 노력해도 꿈을 이룰 수 없을 때……. 계속 좇던 삶의 의미가 사라지면 내 능력 밖이라며 절망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돈이나 명예를 좇아 달려가는 길 위에선 무의미한 순간은 ‘한계’일 뿐이니까.


    글을 쓰며 새롭게 만난 길은 우리가 열심히 좇는 돈이나 명예보다 더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룬다.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지, 욕망에서 자유로운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지, 다른 생명과도 교감하고 있는지,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도 신경 쓰고 있는지. 이 길에서 만난 삶의 의미가 사라진 순간은 한계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넘어설 지점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좌표다. 지금 하고 있는 관계를 살펴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무의미한 순간이 성장의 밑거름이 될 때 한계는 기쁨이 된다. 한계가 기쁨이 되는 길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아직은 길 위에 안개가 자욱해서 더듬더듬 걷고 있다. 하지만 이 길만이 다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을 통해 함께 손잡고 걸어갈 길벗을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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