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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Jul 13. 2023

어린시절의 꿈

오늘에 집중하지 못하는 시기가 있다. 유독 과거를 돌아본다거나, 미래를 꿈꿀때. 건강할때도 가끔 그러지만 이때는 다르다. 마치 내 앞의 '오늘'이라는 친구의 눈을 이리저리 피하는 것과 같다. 오늘을 마주하기가 힘드니까. 현실이 너무 괴롭기 때문에.


다니던 회사의 경영악화로 1년 다니고 권고사직을 당했을때 바로 그런 시기를 겪었다. 그리고 지금껏 디자인을 하고 싶어서 전공과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시간을 쏟아왔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힘들었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또 다른 길을 찾아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적당히 돈 벌면서 살아가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거다. 그런데 나는 좋아하거나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삶을 능동적으로 사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게 목표였기 때문에 그때 당면한 현실이 너무 괴로웠다. 나는 평소 낙관적인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참 오늘을 피해왔던 것 같다. 어렸을때 봤던 애니메이션 ost를 한참듣고기도 하고, 아이돌에 푹빠져서 덕질하기도 했다. 아니면 취업해서 독립하게 되면 어떤 집에서 살지, 어떻게 꾸며놓고 살지 매일같이 집을 찾고 인테리어를 보며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봄날, 동생과 같이 어릴때 살던 동네에 놀러가기로 했다. 지금 집은 15살때부터 쭉 살고 있는 곳이고, 7살때부터 14살때까지 한 동네 안에서 3번을 이사했었다. 그래서 그 동네는 나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다. 가끔 일이 있어 지나간 적은 꽤 되지만, 맘 먹고 제대로 찾아가본 적은 없었다.


동생이 조금 늦게 오게되어서 먼저 그 동네에 도착했다. 5월 말의 이제 거의 여름을 닮은 햇살이 쨍하게 내리쬐었고 나는 빨간 꽃무늬가 있는 진한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서 있었다. 이 동네에 밥 먹을 곳이 있는지 찾기 위해 걷다보니 첫 집 앞에 닿게 되었다. 십 몇년 만이었다. 너무 소중한 마음에 그럴 일은 없지만, 혹여라도 부서질까 조심 조심 집 주변을 걸었다. 그곳은 내게 단단한 아스팔트와 벽돌이 아니라 기억 속 장소가 홀로그램으로 펼쳐진 것 처럼 느껴진 것 같다. 첫 집은 2층짜리 상가 건물이었고, 1층은 식당, 2층은 우리 교회, 3층은 옥상 위 조립식으로 지은 우리 집이었다. 나는 집에 가기 위해 식당 옆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 2층에서 다시 한번 문을 열고 밖에 나와 있는 철계단을 타고 올라갔었다. 밖에 나와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갈때 계단 사이 사이로 보이던 하늘이 기억난다. 18년 후 오늘도 그 계단은 여전히 있었다.

옆 건물은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이 있던 곳이다. 그 학원은 이미 내가 살때부터 다른 곳으로 이사했는데,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간판과 계단의 스티커가 남아있었다. 18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계단과 피아노학원 간판 모두 그때 그 모습 그대로여서 너무 반가웠으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곳은 다 낡아있었다. 철계단은 칠이 다 벗겨지고, 타고 올라가기엔 미심쩍은 모습이었다. 학원으로 들어가는 건물 계단의 간판과 스티커도 마찬가지다. 꼭 폐가 같았다. 온갖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했다. 조금 으스스할 정도였다. 내 어릴 적 기억의 사람이 많이 드나들때 보았던 빛나던 모습이 있으니까 더 그렇게 느껴졌다. 간판이 그대로 인걸 보면 10년도 넘게 아무 가게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건데, 그 오랜 시간동안 이 건물들은 얼마나 방치되어 있었던 걸까. 계단과 피아노학원 건물 모두 차라리 없어지거나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있는 편이 더 좋았겠다란 생각이 들었었다. 어떤 것의 쇠퇴를 보는 일은 마음이 아프다. 꼭 전성기를 지난 사람이나 물건을 보는 것처럼, 그 한물 간 씁쓸함을 보는 것처럼. 어쩌면 그들의 전성기를 보고 누렸던 나도 한물 가버린 듯한 느낌을 받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동생을 만나서 같이 점심을 먹고 세번째 집 근처로 갔다. 첫번째 집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였다. 그 곳에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분리되어 있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잘 오지 않아서 그 당시 14살이었던 내가 자주 갔었다. 조용하고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좋았었기 때문이다. 꼭 나만의 비밀공간 같기도 했다. 봄이 되면 울타리에는 장미 꽃이 만발해 있었는데 올해도 그랬다. 머리를 묶고 교복치마 입고 슬라이드 폰으로 장미를 찍던 기억이 났다. 오늘 나는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장미 원피스를 입고 아이폰으로 찍었다. 동생이랑 카메라 타이머 설정해두고 후다닥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던 기억도 났다. 그때처럼 우리는 또다시 후다닥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그때처럼 즐거웠다.


날씨가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다. 우리는 조금 더 걸어 같이 다녔던 두번째 피아노 학원에 도착했다. 주변이 모두 새로운 건물로 바뀌어져 있어서 그곳에선 전혀 추억을 떠올릴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그 피아노 학원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다. 같은 이름으로 간판과 문에 붙인 스티커가 새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롭게 변한 모습으로 여전히 잘 살고 있는 내 추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아까와 다르게 마음 아픈 낡음을 보지 않을 수 있어서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곳을 나와 바로 앞 아파트 단지로 걸어갔다. 거기는 내 초등학교 친구들이 잔뜩 모여 살던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거기 살지 않았지만 잔뜩 쏘다니던 기억이 가득하다. 하지만 추억을 되새길 여유도 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산이 없던 우리는 그곳을 쏘다니던 11살 주은이와 8살 혜원이에게 급하게 인사한 후 버스정류장으로 급하게 걸어갔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마을버스를 타고 한 번 더 시내버스로 갈아타야 했는데, 정류장이 이름은 같지만 내리는 곳은 달랐던 바람에 한참을 걸어가게 되었다. 동생과 온 몸이 다 젖은 상태로 찰방찰방 물을 밟으며 이따금씩 치는 번개소리에 놀라며 걸었다. 괴로웠지만 동생과 (실성해서) 웃으면서 걸어서 그런가, 나중에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따뜻한 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은 갑자기 그렇게 소나기가 내렸던 날이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때 친구가 오늘 조심하라고, 방금 양산 쓰고 나갔다가 메리포핀스가 될 뻔 했다고 연락이 왔었다.


비를 맞느라 너무 지쳤던 우리는 카페에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음료를 사들고 집에 왔다. 비오는 날은 온 집을 컴컴하게 해두고 영화를 봐야지! 그래서 추억여행의 연장선으로, 새로나온 디지몬 극장판을 봤다. 그런데 그 영화는 꼭 오늘의 추억여행의 의미를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디지몬들이 태일이와 매튜에게 내일은 뭘할거냐고 물었을때, ‘글쎄...’라고 대답하니 디지바이스는 돌이 되고 디지몬들은 사라졌다.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가능성이 사라지면 디지몬도 사라진다고 정해져 있다. 그 가능성은 내일에 대한 두근거림, 꿈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돌이 된 디지바이스가 꼭 마음처럼 느껴졌다. 내일에 대해 식어버린 마음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봄을 맞이한 그들이 나오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직업을 가진 모습이 나온다. 파워디지몬 결말을 참조하자면 결국 그들은 디지몬들과 함께 훨씬 더 큰 어른이 되어있다. 가능성을 상징하는 디지몬이 다시 돌아온 걸 보니 어른이 되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꿈을 가지는 방법을 알게 되었나 보다.


나는 사실 그동안 어린시절 꿈을 가졌던 주은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때 가진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여행을 통해 그때의 나를 만나 가졌던 꿈이 뭐였는지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것은 과거에 갇혀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아름다운 과거라는 유토피아의 감옥에 갇히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어린시절의 꿈을 가지고 있는게 살아있는 거라고 생각한 나에게, 그것보다는 때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꿈을 꾸며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더 살아있는 것에 가깝다고 이야기 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오늘 어릴적 동네를 거닐었던 시간은 과거의 나와 바통터치하기 위함이었다. 곳곳마다 있던 기억의 11살, 8살, 14살 주은이들이 27살 나에게 말한다. 그때의 꿈이 아니라 지금의 새로운 꿈을 꾸며 앞으로 걸어가라고. 그것이 우리에게 부끄럽지 않고, 또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그날 밤, 자기 전 펼친 성경책에는 이런 말씀이 있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달려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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