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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Aug 21. 2023

시간이란

주일 오전 예배가 마치고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교회와 가까운 이 음식점은 교회서 외식을 한다 하면 늘 오게 되는 곳이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총 7명의 여성이 앉게 되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90대 여성이 식사할 때 가져야 할 어떤 법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얘기를 들은 70대 여성 둘은 옳은 얘기라며 답했다. 조금 있다가는 50대 여성이 남편과 운전할 때 있는 일들을 이야기했고 다른 50대 여성 둘이 공감하면서 셋이 공감하는 지점에 대해 나눴다. 50대 여성들의 이야기에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 듯, 90대 여성과 70대 여성 둘은 가만히 그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신생아처럼 눈을 깜빡거리며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26세 나였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나는 굉장히 여러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먼저 오랜 시간 가져온 식사 법칙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는 90대 여성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그녀의 표정과 말을 바라보며 나는 90대 여성이 되어보려 했다. 그러다 맞은 편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70대 여성들을 보았을 때 그 모습을 굉장히 새롭게 느꼈다. 작년만 해도 그녀들은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서 그녀들이 누군가에게 공경을 표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생소한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90대 여성을 공경하는 70대 여성이 되어보았다. 70대의 나이에 20살이 많은 90대 여성에게 공경을 표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운전과 남편 이야기로 공감하고 있는 즐거운 50대들을 보면서 그녀들의 즐거운 공감에 대해 생각했다. 거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70대 여성 둘과 90대 여성의 마음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어느 순간 90대가 되었다가, 또 70대가 되었다가, 또 50대가 되었다.


오후에는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바다 가까이 있는 어느 카페로 갔다. 우리가 가고 싶었던 카페들은 모두 일찍 문을 닫아서 연이은 퇴짜를 맞고 할 수 없이 간 카페였다. 그랬던 것에 비해 너무 좋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우리만 앉을 수 있는 한 자리밖에 없는 발코니는 바람과 바다가 가득했다. 가을과 오후, 바람과 바다가 주는 행복함을 느끼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먼저 근황을 나누었다. 26살의 이야기 말이다. 26살의 생각과 고민과 처지를 한창 나누었다. 그러다 이야기는 내일로 향했다. 우리가 30대가 되면 어떨까? 4년 정도지만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못해 우리는 당장의 27살로 왔다. 그때는 이런 여행을 가고 이런 물건을 사보자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27살이 되었다.


카페가 또 일찍 문을 닫는 바람에 나와서 동네를 한참 걸었다. 우리는 14살에 만난 친구였고 그 동네는 우리가 14살 때 자주 걷던 곳이었다. 길을 걸으며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있는 추억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기억이 떠오르는 듯 평소에는 전혀 기억나지 않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함께 놀던 친구들, 선생님, 학교 이야기를 나눴다. 그 시절 우리가 다니던 학교에는 인조 잔디가 깔려있었는데 여자 중학교여서, 점심시간만 되면 대부분의 여학생이 그 넓은 인조 잔디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그곳은 커다란 피크닉장이었던 것이다.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했던 것일까. 기억이 거의 안 나는데도 그 시간이 중학생 때 행복했던 추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어느새 우리는 그때처럼 떠드는 14살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시간이 가는 게 슬펐다. 예를 들면 12살에 9살을 그리워하는 식이었다. 그랬던 내가 더 이상 크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한 구절 덕분이었다. 모리 선생님께서는 모든 나이가 자신 안에 있다고 하였다. 자신이 그 세월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든 3살이 될 수 있고, 37살이 될 수 있으며 50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은 때가 되면 놓치듯 떠나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내게 큰 생각의 전환을 주었던 글이었다.


오늘을 돌이켜 보다가 그 글이 생각났다. 오늘 나는 여러 나이를 오갔다. 물론 시간은 여전히 똑같이 흘러가고 환경도 변하지 않았고 내 마음가짐만 변했던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는 과거를 잊지 못해 그때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현실이 싫어서 내일만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시간은 물리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내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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