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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잭 라 이르 Dec 16. 2024

빡빡이가 되었다




은둔 세월을 증명하듯 머리카락은 어깨 밑동까지 내리웠다. 늘어진 머리카락처럼 생활양식도 될 대로 되라는 모양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늘어졌지만 늘어난 게 있다고 가끔 느낌을 받았다. 자란 것이 있다고 가끔씩 믿었다. 겨울에도 느리게 줄기를 뻗고 잎을 틔우는 식물과 마주 보며 서로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른 아침 샤워를 하면서 이제 그만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길고 번잡한 머리를 꼬박꼬박 감아내는 게 이제 와서 고달픈 것도 아니고 화장실이 너무 추워서도 아니었다. 체온만큼의 미지근한 다짐은 어디로도 향하지 못할 것이다. 나 하나 보전하기에도 모자랄 것이다. 어느 쪽으로도 굽히지 못할 것이다. 나를 버려야 하는데 나를...... 샤워하는 내내 연약한 다짐을 가만 지켜봤다. 머리를 말리며 다음으로 미루자 싶은 순간에도, 긴 머리가 예수처럼 근사하다고 말하는 거울을 바라보면서도 대꾸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 거스르는 의지이고 어느 쪽이 지키려는 욕망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어느새 너무 조그맣게 놀아나고 있다.


하고 싶은 머리를 물리치고 머리를 빡빡 밀기로 했다. 금연을 결심한 김에 어울릴 것 같아서. 봄에 꽃 피우려면 혹독한 겨울에 시작돼야 하지 않겠어. 유행처럼 반짝하는 새해의 기상은 믿을 수 없어. 벚꽃처럼 금세 떨어지겠지. 나는 아니라고 버텨봤자 혹서를 넘기지 못하고 시들고 말겠지.




머리를 밀고, 돌아와 식물에게 물었다. 너는 하나로 나아가다가도 갈라지더라. 갈라진다는 것은 새로운 일부를 내몰지 않고 받아들이는 거라고 말했다. 땅은 땅과 뿌리를, 뿌리는 뿌리와 땅과 줄기를, 줄기는 줄기와 뿌리와 잎사귀를, 잎사귀는 잎사귀와 줄기와 뿌리와 땅을. 새로움은 새로움과 새롭지 않음을, 새롭지 않음은 새롭지 않음과 새로움을... 적어도 곁은. 적어도 느낄 수 있는 만큼은. 때로는 멀찍한 서로를 묻고 답해야 하므로. 그러니 묻는다. 혼돈에서 태어난 새로움은 사랑이 되기까지 또 얼마나 뻗어나갈 생각입니까. 언제까지 허공을 휘저어댈 생각입니까. 노랗게 돌아오는 수많은 얼굴들을 뒤로하고. 원칙은 땅으로 처박히는 것임에도 내내 거절하며. 거절의 고통을 밟고 올라서며. 고통이 만들어낸 어둠의 추진력으로 저가 처박힐 땅을 더럽히며 솟아오르려는 발길질. 바쁜 지느러미의 자랑질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나는 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겁니까.





담배를 대신할 요량으로 손가락 염주, 단주라는 걸 샀다. 빡빡이가 저 닮은 구슬을 매만지고 있으니 예수는 가고 부처가 온다. 손톱만큼의 의지가 병든 과거를 새로운 미래로 돌려세우고 있다. 약도, 안경도, 담배도, 머리카락도, 글자 적혀 나가듯 떠나간다. 떠나가라. 오직 떠나기를 향해서만 떠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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