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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잭 라 이르 Dec 19. 2024

흡연막차 이별한개피




마지막 담배개비를 기기에 꽂아넣었을 때. 나는 어리벙벙거렸다. 떠날 날이라면 미리 점지해 일러주었고 서로 입을 맞출 때마다 남은 날을 가슴으로 세었지만, 하지만 그날은, 그날은 한밤의 선포처럼 덜컥 찾아왔고 나는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들어가보겠습니다, 고생했다, 꺼져, 따위의 엉뚱한 소리들이 선포의 내막처럼 터져나왔다. 담배에게 인사해 본 적 없으니. 눈빛으로라도 인사는 되돌아올만한 대상에게만 소용이 있었다. 그런데다 영영 헤어질 것을 염두에 둔 인사는 오만한 예언자의 거짓말 같았다.


없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순간에 있었다. 그 순간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오래전부터 창밖에다 차곡차곡 준비해 놓은 세계로, 건너가 버린 듯 나를 향하지 않는 얼굴 하나와 보이지 않는 그 얼굴을 바라보는 몹시도 흉한 몰골이 있었다.


언젠가 그녀에게 이별의 기분을 알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별이 사랑의 기능을 더욱 확장시켜 줄 거라 믿었다. 이별은 두 번 다시 인사할 수 없게 되는 거였다. 인사하고 싶을 때마다 골목을 찾아들어가 담배를 피우는 초라한 사내의 뒷모습이었다.




"고마웠다. 잘 가라."

대체 뭐가 고마웠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담배가 꺼지기 전에 겨우 지어낸 인사였다. 그러자 담배 덕분에 머뭇거릴 수 있었던 순간들이 차곡차곡 떠올랐다.


"치..."

부싯돌 굴리는 소리가 났다. 그 수많은 마찰들이 청춘이었을까.


"풋..."

청춘이라니 간지러워서 서둘러 담배 꺼지는 소리를 냈다.




이제 정말 갔다.

진짜로 가버렸다.

지금부터는 모든 순간이 무방비가 된다. 맨몸으로 채찍을 때려 맞아야 한다. 텅 빈 하루를 시작하는 변의를 일으킬 때에도, 집안일을 하다가 한숨 돌리고 싶을 때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비가 오길 바랄 때에도, 차를 마시면서도, 또한 이 순간에도, 믿을 수 없겠지만, 인정할 수 없겠지만, 다른 공간에서도 "야, 담배 하나 피자!" 같은 소리는, 서로의 고독을 함께 태워 보낼 순간은, 사사로운 이야기를 돌려가며 호흡할 폐부는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어쩌면 더욱 외로워지는 건 아닐까.




두렵다.

이별의 완성을 되짚어 앞으로 얼마의 애도가 필요하게 될지 두렵다.


두려움이 적힌다.


밥을먹다가

찾아올텐데

설거지처럼

하지못한말

벗지못한손


애도는 헌화처럼 눕혀진 담배개비들

담배개비들은 무엇으로 장사치르나


삽질

부단한 삽질로 매장한다고요

애도를 애도하는 것은 땀과 수고요

타오르는 연기 모조리 휘잡아 처넣으세요


어둠보다 깊숙이 내려가

담수를 적시며 말하세요


투명해져라

투명해져라





이제 젖꼭지 없고 보조바퀴도 없다. 그러므로 애원하며 울부짖을 수 있고 꽈당 넘어져 울 수도 있다. 추해질 수 있다. 다만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향해. 모르겠으니 살아봐야지. 빚어진 대로의 삶이 무엇인지 나불게 되도록. 이제 그만 숨어야지. 내 품을 떠나야지. 그리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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