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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로스팅 Feb 09. 2024

전략 수립에 유연함이 중요한 이유

카멜레온이 되어야 합니다

흔히 매년 10월 경이되면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기 위해 전략 TF를 꾸립니다. 각 사업부에서 차출된 전략 TF원들은 하향식으로 전달받은 내년도 매출과 손익 목표를 놓고, 각 사업부장들과 소통하면서 내년도 목표를 할당받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목표치를 놓고 어떤 방식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논의합니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파워포인트 전담 팀원을 배정하여 많게는 수백 장 짜리 파워포인트를 만듭니다. 몇 번의 전략 워크숍을 통해 사업의 방향성을 설명하고 논의하나, 실상은 이미 정해진 하향식 목표를 정하는 통과의례적 절차를 밟습니다.


그렇게 12월이 되면 내년도 사업 목표는 정해지지만, 그래서 우리 전략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에는 공허한 답이 돌아옵니다. 대부분 기업들이 차용하고 있는 이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매년 한번 외부 상황을 가정하면 그 가정이 바뀌지 않는다라는 무의시적 가정에 있습니다. 기준 환율, 원재료가, 경쟁 구도, 소비자의 선호도 등이 바뀌지 않아야 형식적이지만 매년 한 번 수립한 전략이 그래도 유효하나,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두 가지 질문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1)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예측 가능한가?

2) 내가 속한 조직이 시장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가?


두 가지 질문의 답에 따라 네 가지 유형의 전략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통형 전략: 환경 예측이 가능하나, 주도적으로 변화를 주도할 수 없을 때 (예: 석유 산업)

적응형 전략: 환경 예측이 불가능하고, 주도적으로 변화를 주도할 수 없을 때 (예, 반도체)

재편형 전략: 환경 예측이 불가능하나, 주도적으로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때 (예, 애플과 같은 혁신 기업)

비전형 전략: 환경 예측이 가능하고, 시장 변화도 주도가 가능할 때

<Martin Reeves, Claire Love, and Philipp Tillmanns, Harvard Business Review (September 2012)>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략은 '전통형 전략'에 가깝습니다. 충분한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하기에, 파워포인트의 프레임 안에 세상의 변화를 가둘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합니다. 전통적인 전략은 세상의 변화가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기존 사업자들이 그 변화에 충분히 대응 가능할 것이라 전제합니다. 따라서 전략의 핵심은 변화의 예측력입니다. 그렇기에 전략팀에 엘리트들을 배치하며 수많은 분석과 토론, 파워포인트를 양산하게 만듭니다. 분석만 정확하다면 의미가 큰 전략 수립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은 변화를 예측하는 그 순간에도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측할 수 있는 단 하나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한다는 점뿐입니다. 나아가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시장을 주도하기 어려울 때, 가장 좋은 전략은 예측하지 않고 유연하게 ‘적응’하는 것뿐입니다. 이 상황에서 전략의 핵심은 예측할 수 없다고 겸허하게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SPA 브랜드는 빠르게 제품을 만들어 유통하는 대신 작은 물량으로 고객들의 반응을 살핍니다. 그리고 반응이 좋다고 판단된 순간 빠르게 생산력을 늘려 고객 수요에 대응합니다.


따라서, 작더라도 유의미한 특정 분야에서 1등이 되기 위한 ‘혁신 전략’ (경쟁 전략이나 성장 전략이 아니라)이 중요합니다. 1등이 되거나 도태되거나의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전략 수립을 외주 받은 전략팀의 존재는 무의미합니다. 기술을 가진 창업가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혁신가가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같은 혁신 회사는 전략팀이라는 존재가 진공 상태에서 전략을 수립해서 만들어진 회사가 아니라, 창업가의 비전으로 수립된 회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분석에 의존하는 컨설턴트는 승산이 없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혁신 기업’의 위치를 차지하며 시장 내 1위 지위를 차지한 사업자는 이제 시장 예측도 어느 정도 가능해지게 됩니다. 1등 사업자로서 전략을 변경할 때 경쟁사도 따라오기 시작하면서 변화의 흐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애플과 같이 처음에는 기존 선두 업체들이 별로 눈여겨보지 않던 작은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나가 현재와 같은 위상을 확보하자, 이제는 이들의 전략 방향에 기존 사업자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과 유사합니다.

 

이런 혁신 기업에 몸담고 있지 않는 한, 시장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버려야 합니다. 따로 전략팀을 두어 시장 변화를 파워포인트나 워드에 담는 시간에 빠르게 실행을 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적응적으로 바꾸어가는 것이 현명합니다. 카멜레온처럼 주변 상황에 맞추어 색깔을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전략 컨설팅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고, 적응적 실행력이 훨씬 더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상황 변화를 예민하게 주시하고, 그에 맞추어 실행 전략을 다듬고, 성공과 실패 결과에 따라 경로를 수정해야 합니다. 과거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의미가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의미였다면, 이제 적(適, 적합할 적)의 의미는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다는 본래 의미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항상 겸허하게 배우고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략을 파워포인트에 가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 조직에 합류한 이들에게 설명하더라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Martin Reeves, Claire Love, and Philipp Tillmanns, “Your Strategy Needs a Strategy”, Harvard Business Review (Septem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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